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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12월 5일. 샌프란시스코의 워필드 씨어터.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세 명의 기타리스트가 각자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무대에 등장한다. 왼쪽부터 알 디 메올라, 존 맥러플린 그리고 파코 데 루치아. 이름만 봐도 무시무시한 이들 기타리스트들은 곧 연주를 시작한다. 자신들의 라이브 공연이 어떤 형태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후세에 영향을 미칠지 상상조차 못한 채 말이다.

100년의 긴 역사를 지닌 재즈사에서 가장 흔한 형태의 구성은 트리오쿼텟이다. 특히 세명으로 구성된 트리오의 경우(트리오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은 피아노와 드럼, 베이스. 여기서 색소폰을 추가하면 일반적인 쿼텟이 된다) 위대한 그룹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지금도 여전히 활동중에 있다. 현재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키스 재릿 트리오는 빌 에반스 트리오 이후 제일 꾸준하고 독창적인 트리오다.

하지만 재즈 트리오에서 조금 시선을 옮겨서 3명의 기타리스트로 이루어진 어쿠스틱 기타 트리오의 경우 일반적인 피아노 트리오와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는것이 마땅하다. 우선 기타 트리오의 경우 세명 모두 같은 어쿠스틱 기타를 다룬 다는 점에서 3명의 호흡보다도 기량이 우선시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동종(同宗)의 기타리스트들 보다도 월등히 뛰어난 기타리스트들이 그것도 각자 다른 무대에서 다른 성향의 음악활동을 하던 이들이 같은 시기에 뜻이 맞아서 만나는 일이 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근본적으로 세명의 어쿠스틱 기타 인스트루멘틀 연주의 경우 연주자 각자의 개성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개개인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에 기인한다. 게다가 기타 솔로를 위주로 곡을 전개해 나가는 어쿠스틱 연주자들의 연주이기에 조금만 삐끗할 경우 각자 따로 노는 서커스가 될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기타 트리오의 경우 다른 트리오 그룹들이 장기적으로 활동하는 것과는 달리, 공연이나 스튜디오 앨범이나 모두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예외는 존재한다.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의 리더인 존 맥러플린과 리턴 투 포에버 활동은 물론 솔로 활동을 통해 유명세를 떨친 알 디 메올라, 그리고 플라멩코 기타의 대명사 파코 데 루치아는 개개인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며 3명 모두 미스피킹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라이브를 선보였다. 어쿠스틱 기타연주 역사상 가장 화려하면서도 정확한 플레이가 담겨있는 작품이 바로 <Friday Night in San Francisc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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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ft to Right
 John McLaughlin & Al Di Meola
 & Paco De Lucia



앨범의 첫 곡은 개인적으로 기타 인스트루멘틀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인트로라 생각하는 알디 메올라의 'Mediterranean Sundance'와 파코 데 루치아의 'Rio Ancho'의 합작이다. 보통 라틴 계열 아티스트들은 라이브 공연시 개개인들의 대표곡들을 합쳐서 연주하는 형태의 곡이 많지만, 'Mediterranean Sundance/Rio Ancho'같이 완벽하게 묶어놓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두 명곡의 이국적이고도 아름다운 멜로디가 알 디 메올라와 파코 데 루치아 그리고 존 맥러플린의 완벽한 연주에 의해 화려하게 재탄생하는 순간. 이 곡에서는 세명의 호흡도 귀기울여야 한다만 특히 알 디 메올라의 연주가 압권이다. 알 디 메올라의 경우 직접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을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피킹을 구사하는걸로 정평이 나있지만 'Mediterranean Sundance/Rio Ancho'에서는 손이 안보일 정도로 빠른 코드 체인지와 살인적인 피킹을 선보였다.(궁금하면 밑에 유튜브 영상을 보시라)

이들 트리오는 대가들 답게 넉살도 좋다. 두번째 곡 'Short Tales Of The Black Forest' 에서 존 맥러플린과 알 디 메올라는 기타 배틀중에 기타로 '끽끽' 대는 소리를 내는등 신기한 피킹으로 일관하다가 그 유명한 핑크 팬더 삽입곡인 'The Pink Panther Theme'으로 장난(듣다보면 진짜 웃기다)을 친다. 그러다 관객들이 감격에 겨워 소리를 지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떼고 이내 블루스 연주 타임으로 넘어가는 능청스러운 기타연주가 참 재미있다.

다음곡인 'Frevo Rasgado'는 존 맥러플린과 파코 데 루치아의 연주. 맥러플린이 몽롱하고 냉정한 느낌을 낸다면 파코 데 루치아의 연주는 다채롭고 열정적이다. 특히 파코 데 루치아의 문어발을 연상시키는 다섯 손가락 (그의 핑거피킹은 마치 하프를 연주하는 듯하다)피킹은 그가 아니면 감히 엄두도 못내는 수준인데, 파코 데 루치아를 좋아하는 필자가 이 공연을 실제로 봤다면 정말로 까무러쳤을지도 모르겠다. 듣다보면 정말 "와우"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어서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세명의 기타리스트들이 기타 배틀을 선보이는 알디메올라 원곡의 'Fantasia Suite'는 이 앨범의 백미. 개인적으로 첫곡인 'Mediterranean Sundance/Rio Ancho' 과 함께 앨범에서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세명의 본좌들이 기타라는 매개체(媒介體)를 통해 자유롭게 소통하는 형태의 곡으로 주거니 받고니 하면서 상당히 다이내믹한 스타일로 전개된다. 뜨겁고도 아름다운 그리고 치열하지만 우아한, 공연을 마무리 짓기에 부족함이 없는 명연이라 할만하다.  

이 작품에서 존 맥러플린은 다른 곡들에서는 두 후배 기타리스트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Fantasia Suite'에서 만큼은 개인기량을 맘껏 뽐내고 있다. 물론 초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것은 알 디메올라와 파코 데 루치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앨범의 마지막 곡인 실제로는 스튜디오 녹음 곡인 맥러플린의 'Guardian Angel'은 이 노래는 원곡과 비교해서 들으면 더 좋을 듯 싶다.    

<Friday Night in San Francisco>은 음악 리스너들에겐 축복이자 기타리스트들에겐 좌절이다. 적어도 기타리스트에게 이 음반은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자 멀게만 느껴지는 신기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도 수많은 명인들이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고 또 간간히 트리오 구성으로 음반을 레코딩하지만 이보다 충격적이고 뜨거운 기타 연주를 해내진 못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아름답고도 완벽한 연주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존 맥러플린, 알디메올라, 파코 데루치아 같이 기타 연주로 입신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 그것도 기량이 절정이었을 때 한 자리에 모여서 연주를 한 것 부터가 기적이며 혁신이다. 이날 샌프란시스코의 금요일 밤의 공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적 사건인 셈이다.


      

Paco De Lucia,Al Di Meola,John McLaughlin/ Mediterranean Sundance- Pavarotti & Friends For War Child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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