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Old Boy, 2003)

영화/영화 씹어먹기 2007. 4. 20. 21:57 Posted by 루이스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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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옛말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속담처럼 합리적이지 못한 속성을 지닌 비대칭적 상호주의가 의외로 성행하고 있다는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기브&테이크와 같은 상호성의 법칙이 인간관계에서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것을 잘 알고 있지만서도 상투적으로만 받아 들이기 쉬운 것은 너무나 빈번하게 우리 주변에서 비합리적인 상황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비대칭적 상호주의라는 것은 주고 받는 것의 성질을 양으로 가늠하기 힘들때 발생하는데, 가장 상호성의 법칙을 확실하게 준수하면서도 또 그렇지 못한 양면성을 지닌것이 바로  '복수' 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올드보이는 이 '복수'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중에서도 복수에 대한 주객전도가 가장 훌륭하게 이루어진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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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에 대한 고찰

복수 라는것은 말 그대로 해를 입은 본인이나 가족 또는 친구 등이 가해자에 대해서 같은 방법으로 해를 돌려주는 행위를 뜻하는데, 피해를 당한것에 대해서 원상태로의 복구가 아닌 그 해를 당한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돌려주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 이유중 하나는 해를 입은 당시의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누그러뜨림에 있어서 복수가 아주 효과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누가 내 몸에 상처를 냈다면 그것에 대한 치료나 보상을 받는것보다도 그 가해자에게 똑같이 상처를 내는등의 해코지를 하는것이 심리적으로는 더 만족한다는 일종의 보상심리와도 관계가 깊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올드보이에서의 우진과 대수의 행동은 치밀하고 극적이고, 또 처절하지만 보는입장에서는 그것에 대한 반감보다는 내가 그자리에 있었더라도 저렇게 했을것이다 라는 공감과 함께 복수에 대한 간접적인 쾌감과 그 이면에는 씁쓸한 불쾌함이 남아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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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감금당한 오대수. 도대체 누가? 그리고 왜?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 라는 자신의 철학 아닌 철학을 가진 소박한 오대수지만 수습이 안되는 정도를 넘어서서 그가 당하는 복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의 부인은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그에 대한 살해 누명을 뒤집어 쓰는 한편, 15년씩이나 작은 방에서 이유를 모른채 감금당하는등 끔찍한 복수를 당하게 된다.

게다가 자살까지 시도하지만 마음대로 죽을수도 없게하는 등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마저도 박탈당하는데,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오대수에게 이렇게도 무시무시한 복수를 하는것인지 그리고 그 복수를 행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정말이지 보는 입장에서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를 반영하듯 오대수는 생전 처음으로 써보는 휴대폰의 어색함과 이질감 같은건 느껴지지도 않는지 전화를 받자 마자 처음 외치는 한마디는  '누구냐, 너'  이다. 영화의 출발에서부터 마지막까지 누구냐? 이것에 대한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물론 이것에 교묘하게 함정이 있는것을 관객은 물론 오대수 조차도 알아채지 못한다. '누구냐?' 보다는 '왜?' 가 '왜 가뒀냐' 보다는 '왜 풀어줬을까' 가 중요한것을..

오대수는 감금방에서는 몇권이나되는 옥중일기이자 악행의 자서전을 쓰고, 나와서도 인생을 통째로 복습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회상을 통해서야 누가 그랬는지를 겨우 알아차린다. 그러고선 오히려 최면으로 기억을 지웠다며 우진에게 비겁하다고 반문한다. 남의 일이라 그냥 잊어버린것도 모른채, 무심코 던진돌에 개구리가 죽은것을 모르고.

비밀을 알아낸 오대수지만 여전히 '누구냐? 왜 날 가뒀냐?' 와 같은 이 질문을 반복할 뿐이지 그때까지도 바보같은 자신을 깨닫지 못한다. 우진에게 '약속대로 죽어라' 라고 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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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들의 비극적인 이야기

영화에서 등장하는 15년간 혼자 지내는 오대수는 물론이고 그가 운명적으로 만나는 미도, 그리고 복수의 계획을 가진 우진 모두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독한 외로움을 갖고있고, 그것에 대한 우울함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진은 비서에게 외로워서 잠을 못 이룰 정도라 하고 미도와의 메신저 채팅에서도 자신을 '아주 높은 탑에 갇힌 외로운 왕자랍니다. 사시미 공주님' 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미도와 대수는 모두 외로움으로 인한 개미환각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데 그 환각의 성격은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그 비슷한 경험의 공유가 그들이 사랑이 빠지게 되는 이유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공통점, 이것은 인간관계에서 무시하지 못할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처음 감금방에서 나와 15년만에 자신이 납치된 곳으로 되돌아 갔을때 아파트의 옥상에서 자살하는 남자도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대표적인 외로운 인물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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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메시지와 말

올드 보이를 설명할때 정말 빼놓을 수 없는것이 씬마다 심심치 않게 보고, 들을 수 있는 메시지인데 건물의 인테리어나 걸려있는 앵소르의 그림은 물론 기하학적인 문양의 벽지조차도 언어가 실려있다. 그것들은 영화의 주제과 관련하여 감독인 박찬욱의 철학이 담겨져 있기도 하다.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모래알이든 바윗 덩어리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에요' 고 함과 동시에 또한 감금건물의 주인인 철웅과의 전화통화에서는 '오대수는요. 너무 말이 많아요' 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우진은 아이러니 하게도 이 영화에서 가장 말이 많다. 그것은 자신의 전공은 오대수이고 오대수에 관한한 절대 권위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오대수의 모든것을 꿰뚫고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할 말이 가장 많을 뿐.

의도가 있건 없건 어쨋든 결과적으로 자신의 누이를 죽음에 빠트린 오대수는 우진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이러한 이우진의 신념은 위에서도 언급한 상호성의 법칙을 어기는 복수를 하게 된 가장 큰 동기였다.

사실 대수로썬 너무도 심하다는 생각도 충분히 들지 않겠는가? 자신이 생각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이우진의 누이는 결국 죽게했다고 쳐도, 그에 대한 복수로 오대수의 부인을 잔인하게 살해한것으로 모자라서 대수를 15년이나 감금방에 가둔 것조차도 상상도 하지 못할 우진의 치밀한 복수를 위한 전초전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 외에 한가지 더 짚고 넘어가자면 이 영화는 보라색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보라색은 죽음과 슬픔 그리고 속죄또는 구원의 의미를 담고있는 컬러이다. 대수가 처음 납치될때의 우산색이 그러하며, 우진이 피를 닦기 위해 쓰는 손수건이나 복수를 완성하는 결정적인 비밀이 담긴 앨범과 상자 모두가 이 보라색인것은 이 속죄라는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특히 속죄의 의미를 담고있는 보라색의 앨범은 이우진의 15년간 아니 그 전부터 계획한 이우진의 치밀하고 집요한 복수이자, 관객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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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복선

이 영화의 가장 핵심이 되는것이 한국영화에서 잘 다루지 못한 바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근친상간'  인데, 이 근친상간이라는 소재는 선혈이 낭자하고 원초적인 폭력이 담겨있는 올드보이에서도 가장 불편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극의 반전과 맞물려 이는 그 충격의 강도를 배가시키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영화 외적으로 화제를 일으켜 영화를 홍보를 해내는 기폭제가 되었는데, 그에 반대로 좋은 느낌을 얻지못한 관객으로 부터 극도의 반감을 갖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꼭 '근친상간' 이었냐는 것인데, 우진은 자신이 느낀 수치심을 오대수에게 전가시키고 똑같은 고통을 겪게하기 위해서는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것이 가장 큰 복수라고 생각했고 반대로 그 대리만족이 자신을 구원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반대로 이것은 가장 위험한 생각일 수 있는데 그것은 이수아와 보낸 시간들은 이우진 자신을 과거에 머물러 있게 만들 정도로 자신에게는 소중한 추억이었기 때문이다.

누이인 수아가 죽은것에 대한 죄책감을 우진이 털어낼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복수심'이었고 오대수가 '모르고' 저지를 '근친상간' 에 의한 자신과 대수의 대비로 인한 심리적인 우월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우진은 완벽한 복수를 해내고 이렇게 말한다. '우린 다 알면서도 사랑했어. 너희도 그럴 수 있을까?'

영화 외적으로 봤을때도 15년의 세월동안 감금된 오대수가 겪는 고통보다 거의 유일하게 더 강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것은 극적인 반전은 '근친상간' 이 거의 유일했기에 감독과 작가들이 이것을 선택한 이유일수도 있겠다.
 
이 금기 사항에 대한 복선은 영화 곳곳에 깔려있다. 영화 초반, 오대수가 감금방에서 나오자 마자 만나는, 자살을 하려고 하는 사내 또한 대수에게 하려는 말이 바로 개와 자신과의 관계에서 오는 금기에 대한 내용이었고 대수와 미도 모두 환각을 통해 경험한 개미라는 곤충도 그것의 암시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게임을 제안하며 꼭 해야만 하는 숙제를 내준다. 그리고 그것을 풀기 위한 힌트를 하나 둘씩 던져주는데 그 중 결정적인 한가지가 Evergreen이라는 메신저 아이디이고, 다른 하나가 잠언 6장 5절이니 그 내용은 바로 이렇다.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거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영화에선 잠언 6장 4절이라고 하는데 몇 안되는 옥의 티다.)  

오대수는 이것을 통해 우진의 정체를 알아내고, 뒤이어 우진의 누이 이수아가 죽은날이기도 한 게임의 마지막 날 잠언을 통해 우진의 빌딩명이 맥심이라는 사실을 알아내 자신에게 곧 닥칠 비극을 향해 당당하게 찾아간다. 성서의 잠언은 영어로 Proverbs 인데 이것에 대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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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수단. 최면술

이우진이 이 위대한 복수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선 이 최면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우선 오대수가 나오자마자 미도를 만나야 했다. 지중해라는 식당에 가서 미도를 만나고 전화를 걸면 일정한 멜로디가 흐르고 그 전화를 받으면 오대수가 하게 되는 말이 있고, 그것에 반응해서 미도는 정해진 행동을 하고. 집요하다 못해 질리게 만드는 이 순서의 실행은 이우진의 복수에 대한 집념과 그 성격을 알려주는 단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오대수의 자식이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으면 어떠한 복수를 했을지를 상상을 할수 없을 정도로 이 치밀하고 빈틈없는 계획은 최면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최면이 반대로 가장 큰 약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게 영화의 개연성을 망치지는 못한다.

최면감수성이 높은 사람은 이 영화에서와 같이 정해진 행동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한다. 비록 최면으로 둘이 사랑에 빠질수는 없을테니 둘의 사랑은 차라리 운명적이라고 볼수 있지 않을까?  그 사랑의 시발점은 '사랑에 빠져라' 고 하는 최면이 아닌  오대수가 미도에게 건넨 한마디 말이었을테니.
 
 영화에서도 우진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말 한마디에 임신을 하고, 말 한마디에 사랑에 빠지고'  

우진의 이 모든 복수가 완성되고 난 후에 오대수는 최면의 도움을 얻는다. 우진이 자살하고 난뒤에 일어날 일이지만 그것조차도 우진의 계획하에 있다는것을 대수는 알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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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배우 최민식 그리고 유지태

필자와 최민식과의 첫 만남은 바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야망의 세월이었고, 서울의 달이었다. 꾸숑역을 맡았던 야망의 세월도 좋았지만, 항상 당하는 성격이지만 순박하고 의리있는 건달 춘섭역이 가장 인간 최민식에 가까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비슷한시기에 흥행배우로 인기를 끌던 한석규와는 달리 반대로 주춤했던 최민식이 다시 활동을 재개한 작품은 바로 한석규의 추천으로 출연한 넘버3 였다. 넘버3에서는 욕쟁이 검사 마동팔역을 맡아 훌륭하게 소화했고, 1년뒤에는 당시 한국영화가 넘을 수 없었던 벽을 깼던 쉬리에도 출연했는데, 강제규 영화의 특성상 작품성에서 매력을 느끼기 힘든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빛을 발하던건 한국영화로는 놀라운 수준의 CG나 짜임새 있는 구성이 아닌 박무영이라는 북한군 역을 맡은 최민식의 연기였다.

그후 해피엔드와, 파이란 그리고 취화선으로 연기력으로 정점에 있었던 최민식은 박찬욱에게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특히 파이란은 최민식의 커리어에 있어서 절정에 있었다. 후속작인 친절한 금자씨와 마찬가지로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의 오대수역을 최민식으로 캐스팅 해둔 뒤에 시나리오를 썼는데, 최민식이 아니었다면 올드보이의 방향은 완전히 바뀌었거나 이러한 올드보이의 내용 또한 없었을 것이다.

박찬욱감독이 그렇지 않던가? 올드보이는 최민식의 CF라고.

문어나 다름없이 커다란 산낙지를 맨손으로 뜯어먹고, 살기위해 몸부림치며 외롭게 장도리 하나로 이우진이 아닌 애꿎은 수십명의 사내들을 때려눕히며, 우진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며 개가 된다며 구두를 핥고 결국 혀를 잘라 속죄하는 장면.  

모두가 최민식이 아니면 그 누구라도 못 해냈을 장면이다. 게다가 15년간 갇혀 있었다 나온 상처받은 남자의 얼굴과 눈빛을 최민식이 아닌 누가 연기할 수 있겠는가?

이우진 역을 맡은 유지태 또한 이 영화를 통해 몇단계 올라간듯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는데, 다양한 스펙트럼을 선보여야하는 우진의 캐릭터와 함께 영화 내내 우울함 그 자체인듯한 표정은 그가 아니면 어려웠을 종류의 것이었다.

펜트 하우스에서 요가를 하는씬의 그의 표정은 그야말로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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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그리스 신화와 셰익스피어를 만나다

박찬욱감독은 그리스 신화로 부터 모티브를 얻고, 츠루기나 마이가 글을 쓰고 미네기시 노부아키가 그린 동명의 일본 만화로부터 소재를 받았으며 셰익스피어의 첫 비극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 에서와 유사한 방법으로 이미 전작에서 보여준 복수라는 코드를 이용, 구원과 속죄라는 주제를 스릴러라는 장르로 풀어냈다.

올드보이는 말 그대로 박찬욱의 결정체이다. '3인조'의 촌스러운 문어체 대사와, '복수는 나의 것' 에서도 이미 보여줬던 의도적인 계단의 이미지와 잘 보이지 않게 내비쳤던 근친적인 사랑이 이 영화에서 집약되어 있다

혹자는 올드보이를 완벽한 영화로 꼽았을 정돈데 그런 평이 나오는 이유는 올드보이가 스타일과 스릴 그리고 개연성 모두에서 흠이없는 높은 완성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즉, 말끔한 영상미와 그에 따른 짜임새는 물론 속도에 있어서도 빈틈이 없다.

박찬욱이 소포클레스의 소설 오이디푸스 왕을 읽은뒤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스 신화와 마찬가지로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하고 근친을 범하고 나중에 자신의 눈알을 뽑는 오이디푸스 (Oidipous) 처럼 오대수 역시 딸을 알아보지 못한 대가를 혀를 자름으로써 치루게끔 만드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우진의 복수는 끝나지 않았는데 그것은 처음부터 심장을 멈추게하는 리모컨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것.

그리고 올드보이에선 나르시시즘적 요소까지 포함되어있다. 이수아와 이우진의 과학실 씬은 무엇보다도 충격적이지만 어떻게보면 의아하게 생각될 만한 장면이다. 이수아는 친동생과의 성행위 중인데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취해 있다.이것은 자신의 이름이 수아(秀我) 인것과 무관하지 않다는게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게다가 나르키소스(Narcissus)가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에 반해 빠져 죽은것과 같이 이수아 역시 물에 빠져 죽는다.

이 올드보이에도 박찬욱식의 특유의 유머는 여전히 살아 빛을 발한다. 강하고 심각한 주제인만큼 자칫 너무 진지할 수있는 영화를 유머를 통해 덜어냈다는 점에서 굉장히 높은 점수를 주고싶다. 유머가 있는 영화와 없는 영화는 받아들이는 느낌부터가 차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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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기법


이 영화에서는 촬영기법도 두드러졌는데 올드보이는 시네마 스코프라는 명칭의 2.35:1 비율의 슈퍼 35mm 방식을 채택했다. 이미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박찬욱 감독은 한국에서는 최초로 슈퍼 35mm기법을 활용하기도 했는데, JSA가 기존 35mm 카메라를 개조해서 촬영 후 편집작업에서 2.35:1로 늘리는 슈퍼 35mm 방식을 사용한것에 비해 올드보이는 멀티플렉스 시대를 반영하여 아예 시네마 스코프로 제작한다.

내가 최고로 꼽는 장면은 롱테이크로 한번에 찍은 3분간 진행되는 오대수의 장도리액션 씬이다. 관객이 보기에 마치 유리창을 통해 수족관 내부를 그대로 들여다 보는듯한 이 만화같은 장면은 한국영화 역사에 남을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10번이 넘게 며칠째 찍다가 O.K 싸인을 받은 이 씬은  '저수지의 개들' ,'펄프픽션' 등으로 유명한 영화계 최고의 발명꾼인 거장 쿠엔틴 타란티노가 어떻게 찍었냐고 궁금해하며 박찬욱에게 직접물어봤을정도로 해외 영화관계자들도 극찬을 아끼지 않은 명장면이다.

그리고 핸드헬드 기법으로 찍은 기억속의 오대수가 우진을 따라가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회상씬이나 감금방에서의 격투이후 거리로 나오는 장면은 물론, 유일하게 밝은 느낌이 들었던 뉴질랜드 설원에서 찍은 대수와 미도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엔딩씬 또한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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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의 의의

올드보이는 2004년 5월, 57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 한국영화로썬 세계 3대영화제에서 최초로 이 상을 받는다. 여태껏 이 영화에 대한 장점과 칭찬이 언론과 평단에서 이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단점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올드보이는 과잉의 영화이다. 2시간에 살짝 못미치는 러닝타임임에도 불구하고 박찬욱 감독이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인지 메시지,복선, 그리고 볼거리에 치여서 영화를 보고나면 정말 머리속이 어지럽고 강한 장면에 눈이 피곤할 정도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최면이라는것을 사용한것에 대해 조금은 불만이 있다. 이를 다른 어떤것으로 대체하기는 힘들겠지만 이 영화의 약점이 되는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면과 함께 개인적으로 또 하나의 아쉬운점은 음악이 너무 강해서 그토록 잔인한 영상도 약간은 묻히는 장면이 있는것은 물론 몇몇 장면에선 대사가 묻혀서 안들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옥의 티가 아니라 편집과정에서 나온 실수겠지만..

올드보이는 분명 내용이 좋은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비록 이 영화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내용을 담고 있고 실제 생활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비현실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올드보이가 우리에게 이토록 강렬하면서도 오랫동안 화제를 남긴 이유는 아마도 리얼리티가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교훈적이지 못한 내용이라고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지는것은 더더욱 아니다. 올드보이가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을 당시에, 반지의 제왕이 아카데미상을 차지할때 영국이 자국에서 못찍은 것을 한탄한것과 유사하게 일본의 언론이 안타까워한것은, 자기네가 좋은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지 못한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고 또 그만큼 이 영화가 뛰어나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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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살인의 추억과 함께 2000년대 이후 필자에게는 한국 최고의 영화로 자리잡고 있는 올드보이는 당분간은 한국에서는 나올 수 없는 영화중 하나다. 그것은 모든 부분에 걸쳐서 작품에 흠을 잡기 힘들다는것은 물론 감독인 박찬욱과 배우 최민식 모두 절정에 있을때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다.
 
엔딩에서의 만감이 교차하는 대수의 표정과 다 알고 이해하는듯한 미도의 음성을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막을 내리는데 그것에 대한 결론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와 더불어 올드보이가 어느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건 과잉으로 인한 '부산물' 이자 감독이 우리에게 쥐어주는 '숙제'일 것이다.

많은 메시지 중에서도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한가지 사실이 있다.
최면술사가 글 한줄에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 같이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것.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인간도 살 권리는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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