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걸작 피에타 




 예전에 독일 월드컵 직전 한 유명맥주 CF 중에서 아주 재미있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건 바로 월드컵 조 추첨에서 시드 국가인 독일이 브라질,네덜란드, 프랑스와 같은 우승후보들과 한 조에 속하자 월드컵 위원장이었던 베켄바워와 당시 대표팀 감독인 클린스만이 당장이라도 울 것같이 똥씹은 얼굴이 되고 다른 시드 국가인 라이벌 잉글랜드(맞나?)는 부탄, 산마리노 공화국 같이 축구를 못하거나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들과 배치되는 행운을 얻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압권은 마지막에 뽑는 구슬에서 나온 바티칸 시티 였는데 교황이나 신부, 추기경들로 베스트11이 채워진 축구팀이라니.. 웃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어쨋든 그 정도로 바티칸시국은 세계에서도 면적이 가장 작고 또 특이하게도 로마 시내에 있는 국가다. 바티칸시국의 국민이라 함은 바티칸 내에 있는 교황, 신부, 수녀 등이 전부.. 그럼 이 분들은 농사를 짓거나 하는 일을 전혀 안하는데 도대체 뭘 먹고 사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바로 나 같은 사람들이 내는 관람료와 바티칸 내에 있는 식당에서 쓰는 돈 등 관광수입과 우체국에서 버는 돈으로 국가운영을 하는 것이다.       


나라의 규모야 어쨋든 바티칸 박물관은 혼자서는 관람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현지투어 전문 여행사인 맘마미아 투어를 여행 출발전에 신청했다. 개별 관람이 힘든 이유는 워낙에 작품들이 많고 박물관 크기가 큰데다가 주요 작품들 위치 파악이 안되어 있으면 효율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설명도 들을 수 없으니 따로 공부를 하지 않는 이상 감동도 반감될 것이 분명했다.  

 

바티칸 현지투어는 자전거나라가 유명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한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내가 반골이라 그런가 다른 여행사를 선택. ㅋㅋ 마침 같은 숙소에서 함께 투어하는 사람들과 산타마리아 마죠레 성당 앞에서 모였다. 인원체크가 끝나자 교통권을 개별적으로 끊고 테르미니 역에서 지하철로 바티칸 역에 갔다.


아침 일찍인데도 입장객 줄이 매우 길었고 앞뒤에서 엽서를 파는 사람들과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악사들에 견학온 꼬꼬마들로 정신이 없었다. 아마도 씨스티나 예배당이 콘클라베 때문에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황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을 보기 위해 온거 같았다. 하긴 한국에선 비슷한 가격에 모작들이나 사진만 갖고 바티칸박물관 전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16유로에 실제 작품을 보는데 기다리는게 대수겠냐. 










멀리 베드로 대성당의 쿠폴라가 보인다



미켈란젤로와 그의 선, 후배들의 작품이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법한 날씨였다.   





포토존으로 유명한 솔방울 모양의 청동조각상





 벨베데레의 정원에서 구안의 구(Sphere Within Sphere)






일정시간동안 돌아갔다 멈췄다를 반복한




일단 시작은 회화전용 미술관인 피나코테카 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바티칸 박물관은 크게 키아라몬티 박물관, 피오클레멘티노 박물관, 소비에스키의 방, 임마쿨라타 콘체지오네 방, 라파엘로의 방, 현대종교 미술관,시스티나 예배당, 피나코테카 이렇게 나뉘는데 우리 투어팀은 그림들이 전시된 피나코테카 부터 본 것이다. 


가이드 설명으로는 한국에서는 유적지나 유물 등 작품에 손상이 생기면 원형을 기억해 놨다가 모두 때려부수거나 해서 새로 만드는데 이태리를 비롯한 유럽쪽에서는 원작의 모형을 보고 그대로 살려내는 복원술을 쓰거나 심각한 균열이 생겨서 복원이 가능하지 않다면 아예 그대로 놔둔다고 했다. 손상된 그 자체도 역사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물론 가이드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포로 로마노만 보더라도 이탈리아 인들은 유적발굴과 손상된 작품의 복원에 크게 공을 들이지 않는 듯 했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로마의 일부 유적은 심하게 말하면 방치된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름을 까먹었다 그림 바로 밑에 설명이 없는 것은 모르거나 까먹었거나 귀찮거나. 포스트를 보실 때 유명작품은 대부분 설명이 있고 작가와 작품명 으로 표시했다. 굵은 글씨가 작품이다. 뭐라구요? 굵은 글씨가 작품명







 

의 스테파네스키 제단화의 전,후면 

 


 




 

멜로초 다 포를리 작품들. 맨 오른쪽에 빈자리에 있는 그림은 잠시 한국에 갔다고 했다  






멜로초 다 포폴리의 플라티나를 도서관장으로 임명하는 식스토 4세

그림 오른쪽에서 두번째 왠 박명수가.. ㅋㅋㅋ


 


 


지오반니 산티의 옥좌에 앉은 성 예로니모. 지오반니 산티는 라파엘로의 아버지다



 


처음으로 아는 그림이 나왔는데 그 유명한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Transfiguration>이다. 죽기 직전까지 그리다가 결국 제자인 로미노가 완성한 유작.. 처음 보자마자 명화의 포스가 느껴질 정도로 눈에 확 들어왔다. 뭐랄까 색감이 굉장히 강렬하고 선명한데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인 구도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자세한 설명은 못하지만 가이드님 설명을 기억해서 적자면 그림의 윗부분에 있는 인물은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와 좌우에 모세, 엘리야가 그려져 있고 가운데 부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놀라고 있으며, 그 아랫부분에는 오른쪽에 한 귀신들린 사람과 그 주변사람들이 예수를 가르키고 있다. 

  






라파엘로의 성모대관. 그는 스승인 페루지노와 당대 최고의 천재 다빈치,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

 

 


라파엘로의 폴리뇨의 마돈나


위의 세작품은 한 방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르네상스 시대 작품들은 대부분 색감이 화려하고 구도가 안정적이다. 이 작품의 오른쪽에 무릎꿇고 기도하는 인물이 작품을 그려달라고 한 시지스몬도 데 콘티 그 오른쪽에 추기경 복장이 성 제롬. 그림 왼쪽에 거지꼴을 한 이가 세레요한 바로 옆의 인물이 성 프란치스코 푸른색 옷은 마리아, 가운데는 아기 예수다. 당시 푸른색 물감은 상당히 비쌌고 또 성스러운 인물을 그리는데만 사용했다 한다. 성흔으로 유명한 프란치스코는 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옷에 매듭이 세개 잡힌 줄이 보이면 바로 그 사람이 프란치스코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 히에로니무스 

 

 


맘마미아 투어의 미켈윤 가이드님. 유머러스하게 핵심만 찝어 설명해 주셨다. 




줄리오 로마노 와 지오반 프렌체스코 펜니 의 성모대관




작품이 너무 많아서 여기부터는 아는 것만.. 진짜 시간이 너무 오래걸림



 

지롤라모 무치아노 라자로의 부활



 

 

크리스토파노 알로리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든 유디트 









카바라조의 그리스도의 매장 




구이도 레니의 십자가에 매달린 성 베드로






토마스 로렌스의 영국 조지 4세의 초상화 





벤젤 피터의 에덴의 동산의 아담과 이브












회화 구경을 마치고 그리스, 로마 조각상들과 유물들이 전시된 키아라몬티 박물관을 지나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으로




이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인  벨베데레의 라오쿤 군상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의 팔각정원에 있는 이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에 로마의 에스퀼리노에서 발견 되었는데 기원전 100년 그리스 조각가들인 하게산드로스, 폴리도로스, 아타노도로스 가 함께 만든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라오콘의 오른팔이 1906년에 발견되어 1960년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도 이 작품의 모작을 볼 수 있음.





아폴로니스의 벨베데레 토르소


뒤에 아이들은 수학 여행이나 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한것으로 보이는데 어릴 때부터 로마의 유적들을 보고 바티칸 박물관에서 흔하게 명작을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를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테네 출신의 조각가 아폴로니스의 사인이 새겨진 벨베데레 토르소는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의 뮤즈의 방에 위치해 있다. 토르소란 팔다리와 목이 없는 작품을 말하는데 미켈란젤로가 보고 극찬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저 살아 움직일 듯한 역동적인 대퇴사두근과 복근을 보라. 





원형의 방의 돔



네로 황제가 썼던 욕조




 <그리스 십자가의 방>의 헬레나 석관을 지나





촛대회랑의 아르테미스 상을 스치듯 보고






아라찌 회랑으로 





조각으로 보이지만 위의 천장은 그림이라고 한다 놀랍다..






뭔지 기억이 안난다




그리스도의 부활





이제 지도 회랑과 소비에스키 방을 지나 임마쿨라타 콘체지오네 방을 보러.. 슬슬 지쳐가고 있다




프란시스코 포데스티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를 선포






이제 대미를 장식할 라파엘로의 방으로 출발 


라파엘로의 방은 크게 네가지 방으로 나뉘는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방과 엘리오도로의 방 서명의 방 보르고 화재의 방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방은 걸작 아테네 학당이 있는 서명의 방이다. 우리 투어팀은 가장먼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방부터 순서대로 들어갔다.








라파엘로의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




라파엘로와 제자들이 함께 그린 로마의 헌증





천장의 작품은 토마스 라우레티의 그리스도교의 승리 




라파엘로의 십자가의 환시




<엘리오도로의 방> 라파엘로의 위대한 레오1세와 아티라와의 만남



서명의 방에 들어가자 체력이 거의 방전되었다. 하지만 명화를 보니 다시 힘이 솟는다. 서명의 방은 4면의 방에 각각 철학, 신학, 법학, 예술로 구성되어 있는데 철학 파트가 바로 그 유명한 아테네 학당이란 걸작이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


이 작품은 가디언 지에서 선정한 죽기전에 직접 꼭 봐야할 걸작 20선에 선정되었는데 고대의 철학자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과 피타고라스, 에피쿠로스 등의 유명 수학자는 물론 까메오로 그린 라파엘로 자신을 포함하여 무려 54명의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수많은 인물을 그리게 되면 보통 산만하기 마련인데 완벽한 구도와 배치로 그런 단점이 될만한 요소들을 이겨냈다. 






맨 오른쪽에서 두번째 미소년(?)이 바로 라파엘로다 




 라파엘로 성체 논의



<보르고 화재의 방>으로 이동


라파엘로와 제자들의 보르고 화재


라파엘로와 제자들이 함께 한 샤를마뉴 대제의 대관








이제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이동. 화룡점정을 찍으러 간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다. 며칠만 일찍왔어도 제일 중요한 그림들을 못 볼뻔했다. 이유는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바로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하기 때문에 관람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천지창조를 보는 순간 말문이 막힌다거나 하진 않았으나 도대체 어떻게 인간이 이걸 그려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와 매직아이를 보는 듯한 입체감에 놀랐다. 


그냥 잠깐 그림을 올려다 보는데도 목이 빠질거 같은데 이걸 그리는데 미켈란젤로는 4년이 넘게 그렸으니..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은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있지만, 나만 빼고 다들 말없이 사진을 찍고 있었고 동행중에 한명이 촬영한 사진을 얻어 살짝 올려본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 (천지창조)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박물관 관람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폭우가 온다. 그래도 점심을 먹으러 갔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고




세팅을 하고





와인과 함께 등심 스테이크가 나왔다





피자도 나왔다






까르보나라





봉골레





다 쳐묵하고 나왔는데도 밖엔 여전히 비가 마니온다





로마 3대 젤라또 집이라는 젤라테리아 올드브릿지





이 친구 한국말 잘한다 무슨맛 먹을래? 섞어줄까?




물어보길래 나는 두가지 맛으로







베드로 광장에 서있는 성 베드로의 조각상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배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열두제자를 향해'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에 당시 시몬이었던 베드로가 이런 대답을 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 믿음에 탄복한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축복의 말을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태복음 16장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요약하자면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라.


그로 인해 베드로의 상징은 황금열쇠가 되었고 베르니니가 만든 광장은 위에서 내려다 보면 황금열쇠 모양으로 보이게끔 만들어졌다. 






 이제 베드로 대성당으로 간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선정 일생동안 꼭 가봐야 할곳 10위이자 엄청난 황금과 대리석을 들여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입구 정면에선 제대로 사진을 찍을 생각을 못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곳에 지어졌다. 카톨릭으로썬 베드로를 1대 교황으로 삼으면서 정통성과 함께 권위와 명분을 얻은 셈. 


하지만 이 엄청나게 큰 성당을 짓기 위해선 그만큼 많은 돈이 필요했고 때문에 레오 10세가 면죄부를 팔면서 많은 사람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이에 분노한 마르틴 루터와 그의 추종자들의 종교개혁운동을 시작으로 기독교는 구교와 신교로 각각 나뉘게 된다. 결국 이 성당이 그 종교개혁의 발단이었다.     


   



성당 규모가 정말 엄청나다. 베드로 성당을 짓다가 돈이 부족해서 면죄부를 팔던 로마 교황청이 이해가 될 정도다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의 걸작 발다키노. 만드는데 무려 40톤에 가까운 청동이 들어갔다 한다

  






성당 입구 오른쪽에 위치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마리아가 아들인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작품으로 이 작품을 보고 미켈란젤로가 최고의 예술가이자 천재임을 확신했다20대의 미켈란젤로가 이 위대한 작품을 만든 것을 주변에서 도저히 믿지 않아 마리아의 옷에 그가 유일하게 서명을 새겼다고 하는데 1970년대에 헝가리의 한 정신나간 돌+아이가 여러번 망치질을 해서 파손시킨걸 복제품을 통해 원상태로 복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방탄유리로 보호하고 있다. 


그나저나 어떻게 석고로 붙여서 만든 것도 아니고 네모난 대리석을 깎아서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저 섬세한 손가락과 옷의 주름은 지금봐도 전율이 돋는다. 그냥 보고만 있는데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번 여행중 가장 인상적인 예술품. 








동상의 오른발을 만지면 복을 받는다는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베드로 상. 

그래서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오른발은 다 닳았다.





내부관람을 끝내고 난뒤 7유로를 내고 엘리베이터로 쿠폴라로 올라갔다. 



쿠폴라 위에서 보니 더 압도적인 규모다




밖으로 나가니 베르니니가 완성한 성 베드로 광장과 테베레 강이 보인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황금열쇠 모양이다



로마는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인 미켈란젤로와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 베르니니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 베드로 광장 역시 베르니니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광장 정중앙에는 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있다. 성 베드로 광장은 좌우폭이 240m나 될정도로 거대한 규모이며 무려 30만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베르니니의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감상하고 싶다면 보르게세 미술관으로 가면 되는데 예약해야만 관람이 가능해서 둘러보지 못했다. 






베드로 대성당의 근위병은 스위스 용병에서만 뽑는다고 한다  





 비가오니 나름 운치있다 베드로 대성당의 돔은 멀리서 봐야 더 잘 보인다.



베드로 대성당의 쿠폴라는 미켈란젤로와 그의 선후배에 의해 완성된 작품이다. 당시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미켈란젤로는 교황 바오르 3세의 지시를 받아 쿠폴라를 위해 그를 견제하여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그리게끔 율리우스 2세를 부추겼던 도나토 브라만테와 그 후임자 줄리아노 다 상갈로가 그린 여러 가지 설계안들을 모두 참고하여 바로 전임자였던 다른 상갈로 안토니오 다 상갈로의 계획을 대폭 수정하여 재설계한다. 


베드로 대성당의 쿠폴라는 안쪽 직경은 41m로 두오모의 쿠폴라보다 작지만 지상에서 쿠폴라의 꼭대기 십자가의 끝까지 136.57m에 이르는 엄청난 높이에 돔을 올리는 것은 그야말로 천지창조에 맞먹는 미켈란젤로 일생의 프로젝트였고 결국 그는 쿠폴라의 완성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기본적으로 미켈란젤로의 쿠폴라 설계안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만든 피렌체 두오모의 그것을 많이 참고한 형태였다. 베드로 대성당의 쿠폴라는 벽돌로 된 두 겹의 외피로 건설되었으며 특히 바깥쪽의 것은 16개의 석조 서까래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8개 였던 피렌체의 것보다 두 배나 많았으나 미켈란 젤로보다 먼저 설계안을 냈던 전임자 줄리아노 다 상갈로의 것보다는 적은 숫자였다. 


쿠폴라 중에 원통형의 돔을 완성한 미켈란젤로는 사망전까지 돔의 초기 도면들과 상세 도면을 포함한 얼마 안 되는 수의 도면을 스케치로 남겼는데 그가 죽고난 뒤 후임자 중에 한명인 자코모 델라 포르타는 그가 남긴 도면과 커대한 목조 모형을 여러 방법으로 고쳐 보고 여기서 그가 만든 변경사항을 설계안에 적용하였다. 


물론 자코모 델라 포르타가 바꾼 변경사항이 있었으나 그것은 핵심 아닌 장식을 넣거나 하는 등의 부수적인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교황 식스토 5세는 자코모가 미켈란젤로의 의도를 수용할 수 있는 과학적 이해가 부족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쨋든 미켈란젤로의 쿠폴라를 만들기 위한 기본 발상은 브루네르스키와 마찬가지로 반구 형태가 아닌 계란 형태였다. 


결국 쿠폴라의 공사는 수십년을 더 들여 자코모 델라 포르타와 폰타나에 의해 완성이 된다. 그들은 교황 식스토 5세의 치세 마지막인 1590년에 대성당의 중앙 돔을 완공하였는데, 18세기 중반 돔에 균열이 생기자 붕괴를 막고자 두 외관 사이에 네 개의 쇠사슬을 고리처럼 설치하였다. 여러 시대에 걸쳐 열 개의 쇠사슬이 설치되었고, 그 가운데 최초는 미켈란젤로가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 대성당에 한 예방조치처럼 고안했을 것으로 보인다. 





천사의 성(산타젤로 성)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를 타니 비가 완전히 그쳤다 




맥주 사와서 같은 숙소 여자분들과 한잔하고 완전히 뻗었다






,
댓글 구독이 염통을 숨쉬게 합니다
BLOG main image
항상 엔진을 켜둘께
여행과 일상 그리고 음악과 영화
by 루이스피구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372)
일상다반사 (19)
나들이 (1)
(0)
국내 식당 (0)
국내 여행 (1)
유럽 여행 (15)
한 곡의 여유 (83)
한번에 다섯장 (11)
음악 이야기 (42)
음반 리뷰 및 소개 (99)
도서 (2)
영화 (30)
공연/예술 (7)
야구/스포츠 (1)
축구 이야기 (16)
클래식 매치 (10)
경기 리뷰 (34)
TNM textcube get rss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항상 엔진을 켜둘께

루이스피구'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Copyright by 루이스피구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DesignMyself!
루이스피구'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