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했던 베네치아 풍경은 이러했다. 하지만 그거슨 쿰.. 위 사진은 두번째 날이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도시는 로마도 피렌체도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생각했던 유럽의 이미지중 가장 강렬했던 것은 에펠탑이 빛나는 파리와 베네치아에서 관광객들이 타고 다니는 곤돌라였는데, 쉽게 말하자면 베네치아에는 일종의 로망 같은게 있었다. 즉, 베네치아는 내가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도시다. 


사계로 유명한 안토니오 비발디가 태어난 음악의 도시. 물 위로 건물들이 떠있는, 차 한대없이 배로만 이동이 가능한 운하의 도시.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베네치아는 름 꼼꼼하게 다녔던 로마와 피렌체와는 달리 비교적 짧지만, 도착 당일과 다음날 오후 밀라노를 가기 전까지 이틀 내내 관광할 수 있는 일정이기에 첫째날은 넉넉하게 부라노, 무라노를 구경하고 다음날은 나머지 본섬을 종일 구경하기로 계획을 짰었다. 






베네치아로 가는 길. 하지만 창밖엔 비가 온다





피렌체 중앙역에서 베네치아로 가는 기차를 타고 케밥을 기차 안에서 쳐묵하면서 가는데 앞에 앉은 이태리 아저씨가 씩 웃으면서 말을 건다. 



아저씨: 너 여행중인가 보구나. 어디가니? 밀라노? 베네치아?  

피구:    (케밥 뜯다말고) 저 베네치아 가는 중입니다

아저씨: 올ㅋ 난 밀라노 가는데 밀라노는 지금 눈온다더라 

피구:    리얼리?  

아저씨: 어 베네치아는 모르겠는데 요새 추우니까 옷 따뜻하게 입어라

피구:   올ㅋ 감사 ^^



이태리 사람들 수다떠는걸 좋아한다더니 과연 그랬다. 관광객들에게 먼저 말거는 케이스는 드물다지만 보통 이탈리아에서는 걸어다니다 보면 길 막고 대화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들 중 대부분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 한다. 그 정도로 얘기하는 걸 즐기며 표현력도 뛰어나고 어울리기도 쉽다. 무뚝뚝한 독일인들이나 콧대높은 프랑스인들과는 상당히 대조적. 남자들은 그럴일이 없는데 아마 여자분들은 이탈리아 여행하면 찝쩍대는 남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그냥 무시하면 된다. 천성이 그런것이니..    







가면의 도시 베네치아엔 매년 1월말부터 2월초 사이에는 가면축제가 있다. 불꺼놓고 보면 무서울까봐 안 샀음



유럽 여행은 한 국가에서 며칠을 보내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도시마다 매력과 개성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고 그래서 일정을 짤 때도 한 도시에서 며칠 구경하고 이동하는 코스로 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한 도시에서 일주일씩 있으면서 여유있게 본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시간문제로 보통은 2박에서 3박 정도로 잡는다. 


문제는 여행지에서 돌발적인 상황이 많이 발생 한다는데 있다. 예를 들자면 몸이 아프다던가 같이 여행온 일행과 다툼이 생긴다던가 하는건 아주 흔한 일이다. 난감하게도 소매치기를 당해서 지갑이나 여권등을 잃어 버릴수도 있고,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짐은 다른곳으로 가서 찾을 수 없다던가 흔하지 않지만 폭우나 화산폭발 같은 자연재해로 비행기가 못 뜬다던가 할 수도 있다. 아주 드물지만 나처럼 휴대폰이 물에 빠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장 흔한 문제는 바로 날씨였다. 차라리 비가 오거나 하는건 양반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에서 태풍이나 추운날 눈이 오거나 하면 일정은 그날로 끝인거다. 근데 그것이 현실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베니스 여행하는날 눈이 온다면 어떨까?




베네치아에 도착해서 산타루치아 역에 내렸는데 눈이 정말 마니온다. 기차역 앞에 나가니 운하가 보이고 그 위에 건물들이 떠있는데 하늘에서 눈이 오니까 말로 설명이 안될 정도로 아름다웠다. 요즘에는 3월에 눈오는 것도 흔한 편이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생전 처음보는 이국적인 풍경에 그냥 나도 모르게 신나서 환호성을 질렀다. 아마 옆에서 날 본사람들은 왠 미친넘인가 했을거다. 꿈인가 생신가 싶을 정도로 그 정도로 기분이 들떴다. 





 

정말 상상도 못한 말도 안되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추워서 숨질뻔 했다





하지만 이 좋았던 기분은 딱 30분을 넘어서자 완전히 반전되었다. 진짜 말도 안될 정도로 추웠던 것이다. 눈도 함박눈이 오면 날씨가 포근해지곤 하는데 이날 온 눈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고 후두둑 떨어지며 바닥에 떨어지면서 녹는 눈에, 겨울 날씨중에 가장 돌아다니기 안좋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였다. 문제는 추위보다도 내 준비성이었다.

처음부터 인포메이션부터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 바포레토 타는 법은 물론 정확한 숙소 위치도 몰랐던 것이다. 안 그래도 길 헤매기 쉬운 베네치아에서 최소한 가는법이랑 이동경로부터 확실히 알고 베네치아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다른 도시들 같이 책에 있는 지도로 찾으면 되겠지하며 그저 안일하게 생각한게 잘못이었다. 

베네치아에 계단이 많은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힘들 줄이야.. 밤에는 길치지만 낮에는 길 잘 안헤매는 편인데도 베네치아의 골목은 정말 미로나 다름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서 가면 되겠지 그런게 여기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만약 이 글을 보는 분중에 베네치아에 관광할 일이 있다면 무조건 산타루치아 역 근처로 숙소를 잡으시길 바란다. 가격이나 관광지 가까운게 문제가 아니라 베네치아는 역에서 가까운게 최고다. 이유를 알고 싶으면 직접 가보시면 된다.




이런 함박눈이 아니었다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얼음 덩어리였다



내가 있는 곳은 본섬 역 근처인데 호텔은 케르토사. 멘붕이었다.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아아오 아아오
    




내가 묵을 곳은 기차역이 있는 본섬이 아닌 시내에서 조금 가서 따로 있는 케르토사라는 섬에 있는 호텔이었는데 일단 눈이오니까 계단들을 오르내리며 다니는거 자체가 고역이었고, 또 바포레토 정류장이 시내버스처럼 가는 노선이 다 다르기 때문에 아무거나 탈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추운날 한시간을 넘게 한손에는 우산을 다른 한손에는 캐리어 끌고 다니니 너무 추워서 손이 떨어질 것 같았다. 

게다가 지나다니는 사람도 대부분 관광객이라 호텔에 가는법은 커녕 케르토사 라는 섬을 아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고 휴일이었는지 열고 있는 가게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마침 근처에 인터넷 방으로 보이는 가게가 보였다. 동방박사가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마굿간을 찾은 기분이랄까. 눈이 와서 신발은 다 젖고 아이폰 배터리는 이것저것 검색하다 보니 이미 꺼졌고 신발을 새로 갈아신고 휴대폰 충전과 호텔 위치 검색도 할겸 무작정 들어갔다. 

다행히 이 가게 주인은 내가 갈 섬으로 가는 배와 정류장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지금 위치에서 10분정도 걸어가서 4-1번 배를 타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줬다. 그러나 가격은 친절하지 않았다. 인터넷방 30분 좀 넘게 사용한거 같은데 가격이 무려 5유로.. 한국돈으로 7천원이 넘었다. 한국에선 한시간에 천원 안팍인데 베네치아 바가지 심한건 알았지만 역시나 명성대로 심했다. 









그래도 눈은 거의 그쳤고 호텔 찾아 가는법도 알았으니 반은 해결 됐다. 일단은 20유로 짜리 바포레토 승차권을 배에서 사고 긴장을 풀었다. 바포레토 표는 시간에 따라서 가격이 다른데 기억하기로 24시간 짜리를 샀다. 보통은 표 검사를 안하는데 불시에 했을 때 승차권이 없으면 상당한 벌금을 물게 되니 표 잃어 버리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한다.    








곤도라 타는 비용은 상당히 비싸다  






베네치아는 무라노 섬 덕에 유리 공예로도 유명하다 




문제는 첫날 일정이었다. 본섬 구경이야 숙소에 갔다 다시 나오면 되고 날씨가 안좋아도 다닐 수는 있다지만 부라노섬은 절대적으로 날씨가 좋은 날이 아니면 돌아다닐 수가 없다. 어쨋든 머무는 시간이 짧은만큼 짐부터 풀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뒤 다시 나와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마 모든 여행지를 통틀어서 베네치아 만큼 겉할기식 관광을 한적이 없을 테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후회보단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관광도 좋지만 내 몸이 편한게 먼저 아닌가.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 내가 제일 잘한 일은 여분의 신발과 스포츠 장갑을 챙긴 거였다. 누가 3월말에 장갑 끼고 다닐 생각을 했겠는가. 그에 반해 최악의 실수는 베네치아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항공권이 드물어서 밀라노에서 가는 걸로 끊은 것이었다. 결국 베네치아도 애매하게 구경하고 밀라노에선 피곤해서 아예 아무것도 못하고 잠만 자게 되었던 것이다.  





그 유명한 리알토 다리



리알토 다리는 베네치아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다리는 워낙 수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관계로 무너지면 다시 짓는등 임시방편으로 버티다가 결국 새로 만드는 다리는 대리석으로 만들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 공모전에는 초기에 미켈란젤로와 팔라디오가 참여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하지만 큰 배가 지나다닐 수 있는 아치의 형태를 두고 상당한 번복과 진통이 계속되었고 결국 70여년만에 단 하나의 아치의 형태로 만들자고 제안한 무명의 안토니오 다 폰테가 설계를 맡게 된다. 하지만 완공하는 데에는 겨우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리알토 다리를 무게를 견디기 위해 무려 1만개 이상의 나무 말뚝을 심었다고 한다.







리알토 다리 위에서. 눈이 그치니 사람들도 하나둘씩 늘어난다




그림같은 베네치아의 풍경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배가 끊기기 전까지 베네치아 본섬을 구경했다. 

첫날 찍은 사진이 터무니 없이 적은 이유는 눈은 그쳤어도 너무나도 추웠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녁을 먹고






보수중인 산 마르코 성당. 유럽의 유명 건물들은 시도 때도 없이 보수중일 때가 많다



산 마르코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으로 바로 신약 성경의 마가복음을 쓴 마가라는 인물이다. 마르코는 이집트에서 활동하다 순교했는데 그의 유해를 그 유명한 베니스의 상인, 즉 베네치아 사람들이 숨겨서 이곳으로 가져왔고 마르코 성당 밑에 유해를 묻었다고 한다. 옛말에 네덜란드 사람이나 베니스 상인과는 거래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 먼 나라에서 사람의 시신을 고기 더미에 숨겨올 정도의 임기응변이라면 말 다한거 아닌가 싶다.


파사드 정문 위 좌우에 두마리씩 총 네마리의 말 동상은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온 것으로, 나폴레옹이 베네치아에 쳐들어 왔을 때 파리로 가져갔다가 프랑스의 패배 후 다시 되돌려 받았다고 한다. 진품은 성당 내부에 있다. 프랑스의 문화재 약탈 얘기 나오니까 쓰면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이건 나중에 파리 여행기 쓸 때 따로 시간을 내서 까도록 하겠다. 






나폴레옹이 극찬했던 산마르코 광장. 유럽에서 가장 큰 광장으로 화려한 야경이 기가막힌다




유럽에서도 어떤 다리에서든 연인들의 자물쇠가 보인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역시나 일찍 들어와서 뻗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만족한 여행지를 가더라도 나에게는 최악의 장소일 수도 있고 반대로 나에게 좋았던 곳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여행지 일수도 있다. 여행 당시 그 최악의 여행지가 바로 베네치아였다. 눈도 오고 너무나도 추운날 일정은 일정대로 망치고 신발도 다 젖고,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힘든 날이었다. 그 비싼 돈 들여서 여행지와서 무슨 고생인가 싶었다. 


그래서일까. 여행기간을 잡으려면 최소 한 도시당 사흘 이상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왜냐면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워도 다 뜻대로 맞아 떨어질 순 없기에 다른 변수도 고려해야 하고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그 조차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여행이란 것 역시 삶의 일부고 또 여행 자체가 인생의 축소판이 아니던가. 

  

그러고보니 시간이란게 참 무섭다. 당시만해도 최악의 여행지 였는데 고생한것도 다 추억이 되고 즐거운 시절로 각색된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어느 카메라 CF의 카피 처럼 베네치아 역시 잊을 수 없는 여행지가 되었다. 다음날 일정은 부라노 섬과, 무라노 섬에 가는 것이었다. 부디 날씨가 좋길 바라며 11시도 안되어 일찍 잠에 들었다. 베네치아의 역사와 바다 위에 건물을 세워 올린 이야기 등 재미있는 스토리는 곧 다음 글에서 자세히 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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