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비 원더 내한 공연 후기

공연/예술 2010. 8. 11. 02:39 Posted by 루이스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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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공연 역사상 인터넷 예매부터 이렇게 치열했던 적이 있었을까 싶었을 정도로 이번 스티비 원더의 내한 공연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기대치가 높았었다. 나도 역시 피터지는 예매전쟁에 일찌감치 뛰어들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고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는 암표가격에 답답해했다. 다행히 공연 며칠전에 정가에 표를 파신분 덕분에 VIP나 FR석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좋은 자리인 R석에서 관람할수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무사히 관람 후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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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스티비 원더가 썸머소닉 페스티벌을 마치자마자 입국해서 매우 피로한 상태였고 일본 공연이 관객들 반응이나 컨디션면에서 만족스럽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조금 걱정도 되었다. 게다가 태풍의 영향으로 공연장 주변 상황은 안 좋았고 올림픽 체조 경기장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복잡했다. 역시나.. 장내가 잘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 시작은 30분이나 지연되었고 실내임에도 더웠고 습도마저 높아 불쾌지수는 극도로 높았다.

But. 8시 30분 정각에 공연은 시작되었다. 조명이 모두 꺼진 상태에 조금은 낯선 멜로디의 키보드 소리가 조금씩 커져갔고 기대감을 높이는 중 무대 좌측에서 그 주인공이 등장했다. 바로 스티비원더였다. 특이한 문양의 남색 남방에 키타(Keytar)를 메고 천진난만한 미소로 서서히 걸어나오는데 도저히 실감이 안나는거다. 하지만 곧 My Eyes Don't Cry로 달렸고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로 관객들을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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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도 이 노래 막판에 흥에 겨운 스티비원더는 바닥에 냅다 들어눕더니 등 뒤로 키보드 연주하기를 시전했고,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라 시작부터 굉장한 흥분을 몰고왔다. 나원참.. 이렇게 VIP석에 있던 사람들이 부럽던적이 없었다. 이어서 쉴새없이 80년대 레게 명곡 Master Blaster (Jammin')와 비틀즈 원곡의 We Can Work It Out, As If You Read My Mind 등 빠른곡으로 이어졌다.

물론 공연초반부의 하이라이트는 여자 보컬과 함께한 If You Really Love Me 였는데 스티비 원더가 여자분께 마음을 얻기 위한 설정으로 비트박스를 하는 등 평소에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되어 보는 이들을 즐겁게 했다. 이어서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발라드인 Knocks Me Off My Feet와 바로 이어서 부른 Lately는 정말 감동적이었는데 특히나 Lately는 내가 처음으로 들은 스티비의 곡이라 더 감회가 깊었다. 소위 속된 말로 질질 쌌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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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스티비 원더 공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오랫동안 친분이 있었던 자신의 친구 마이클 잭슨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특히 마이클 잭슨 영결식에서도 연주했던 Never Dreamed You'd Leave in Summer를 Lately에 이어서 완곡으로 불렀고 공연 중반에는 역시 셋리스트에 없었던 The Way You Make Me Feel로 마이클을 반추했다. 두 곡 모두 최근 다른 곳에서는 듣기 힘든 노래인데다 완벽한 컨디션으로 소화해서 더욱 듣는이들을 뭉클하게 했던거 같다.  

발라드 메들리를 마치고 스티비는 자신이 작년에 나온 곡중에 가장 좋아했다면서 최신 힙합송(?) Empire State of Mind에서의 앨리샤 키스가 부른 유명한 훅을 관객들에게 유도하는데 아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사를 잘 모르는지 떼창이 잘 나오지 않자, 센스있게 'In New York'을 'South Korea'로 바꿨다. 하지만 반응이 생각보다 별로다 보니 'OK, OK'하면서 끊고 바로 Higher Ground로 분위기를 띄웠다. 매우 신나는 곡이지만 한국에선 유명하지 않은 곡이라 관객들 호응은 다른곡들에 비하면 그리 좋은편은 아니었고 2연벙에 당황했는지 스티비도 중간에 가사를 한번 틀리는 실수를 하더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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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장에서 찍은 사진 중 유일하게 건질만한 사진. But 나에겐 전곡 녹음 파일이 있음 ㅋ


하지만 '빰빰빰빰' 떼창을 유도하며 시작한 Don't You Worry 'bout a Thing은 매우 반응이 좋았고 특히 이 노랜 세션이 대박이었다. 이날 공연에서는 스티비도 매우 컨디션이 좋았지만 참여한 세션과 백보컬도 정말 대단한 역량을 선보였다. 공연 후반의 Free와 함께 Don't You Worry 'bout a Thing의 연주는 지금도 귀에 생생할 정도다.

이날 공연의 화두는 바로 '평화'와 '사랑' 이었다. 스티비원더는 조명을 다 끄고 연설(?)에 가까운 장황한 메시지를 읊었고, 특히 북한과 한국의 상황을 설명하며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했다. 70년대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현실의 문제를 비판하고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며 행동으로써 해결하려 했던 스티비원더 였기에 더욱 동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이어서 아무 조명도 없이 어두캄캄한 상태에서 열창한 Visions은 이런 메시지에 걸맞는 명곡이었다. 그리고 한 소년의 어린시절과 성장기에 빗대 70년대 흑인사회를 조명한 명곡 Living for the City는 관객들의 박수소리와 노래 내용에 어울리는 영상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지는 것이 매우 멋진 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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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새도 없이 스티비원더의 첫 히트곡 격인 Yester-Me, Yester-You, Yesterday가 이어졌고 Uptight, For Once in My Life, Signed, Sealed, Delivered I'm Yours로 분위기는 절정으로 향해갔다. 이 날 내가 앉은 R석11구역 관객들은 대부분 점잖은 편이라 좀 처럼 일어서서 놀 기회가 없었는데(생각해보라 한 100여명이 다 앉아 있는데 혼자 서있는 뻘쭘함이란..그정도로 내 자린 물이 안좋았다) Uptight에서는 도저히 앉아 있을수가 없었다. 여느 락 콘서트 못지않게 뛰어놀 수 밖에 없었던 신나는 모타운 메들리였고, 내가 일어서자 주변 분들도 모두 일어서면서 덕분에 이후로는 박수와 춤으로 스티비의 목소리에 화답할 수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Part Time Lover부터 이어진 메가톤급 히트곡 메들리. 이미 개그콘서트 엔딩곡으로 유명한 노래지만 익숙한 신서사이저 멜로디가 나오니 이건 뭐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졌다. 게다가 원래 현대카드 측에서 발표한 셋리스트에서 빠졌던 곡이라 더 그럴수 밖에 없었다. 이어서 Sir Duke와 마이클의 The Way You Make Me Feel, Isn't She Lovely가 연속으로 터져나오자 흑형이 내 안에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몸이 절로 덩실덩실 움직이는 현상이.. 특히 스티비 원더의 어린 자식들이 무대에 등장한 상태에서 흐르는.. 지금껏 영상으로만 보던 Isn't She Lovely의 하모니카 연주는 감동 그 자체였다.

조금은 생소한 라틴풍의 연주와 객원 콰이어들이 환상적인 조합을 연출한 Free와 '싱얼롱' 전용곡이나 다름없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My Cherie Amour를 지나 국내에서는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로 유명한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로 공연은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어서 나온 곡은 앉은뱅이도 일으켜 세운다는 Superstition이었고 심장박동 소리에 가장 가까운 그루비한 8비트 박자.. 이게 나오니 정말이지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후렴부의 'Superstition ain't the Way' 뒤에 흘러나오는 관악기 소리는 실제로 들으니 온몸의 피가 막 용솟음칠 정도. 아마 Superstition에서 앉아 있던 관객은 이 공연에 올 이유가 없어보였다. 말 그대로 모든 사람들이 열광했던 곡이었다.




 
                                     Stevie Wonder / Superstition


공연의 피날레는 역시 Another Star였고 팬서비스로 불러준 Happy Birthday에 이어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함께 멋지게 장식했다. 재미있게도 스티비는 다른 싱어에게 한국어로 I Love You가 뭔지 물어봤고 처음에 '감사합니다'로 잘못알고선 내가 미쳤나보다 하면서 다시 '사랑합니다'로 수정해서 Another Star 에 맞춰 즉석에서 '싸랑~ 합니다~아아~'노래를 불러줬다. 코믹하지만 감동적인 상황이었다. 잠시나마 한국인으로 태어난게 행복할 정도로.. ㅎㅎ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답게 앵콜다운 앵콜도 없었고 원래 셋리스트에 포함되었던 I Wish,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 Overjoyed가 빠진게 조금 아쉬웠지만 부족함이 없었던 멋진 공연이었다. 결정적으로 공간감이란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다 사운드가 너무 컸고.. 결정적일때 고음에서 뭉치는 경우가 좀 있었지만 체조경기장 특성상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완벽하다곤 할 수 없지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그런 성격의 공연이랄까.

지금까지 내가 본 공연중에 가장 멋진 공연임에는 틀림없었다. 이날 스티비원더의 공연은 그 어떤 팝스타의 무대보다도 화려했고, 그 어떤 흑인가수의 음악보다도 흥겹고 신났으며, 세상에 있던 그 어떤 락밴드의 연주보다도 에너지가 넘치며 강렬했다. 그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꼭 직접봤어야하는 공연이었다. 그의 말대로 감동적인 블라인드 데이트 였으며 스티비원더가 흔히 접하기 힘들정도로 컨디션이 좋았기에 더 그랬다. 하루가 지났지만 너무나도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는 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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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비 원더 내한공연 실제 셋리스트 (Set List)


My Eyes Don't Cry
Master Blaster (Jammin')
We Can Work It Out (The Beatles cover)
As If You Read My Mind
If You Really Love Me
Knocks Me Off My Feet
Lately
Never Dreamed You'd Leave in Summer
Empire State of Mind (Alicia Keys cover)
Higher Ground
Don't You Worry 'bout a Thing
Visions
Living for the City
Yester-Me, Yester-You, Yesterday
Uptight
For Once in My Life
Signed, Sealed, Delivered I'm Yours
Part Time Lover
Sir Duke
The Way You Make Me Feel (Michael Jackson cover)
Isn't She Lovely
Free
My Cherie Amour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Superstition
Another Star
Happy Birth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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