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텔톤의 아기자기한 집들로 꾸며진 부라노 섬






그 옛날 전기도 없던 시절. 베네치아의 한 작은 섬에선 대부분의 남자들이 새벽부터 고기잡이 배를 타러 나갔다 저녁 늦게 돌아오면 여자들은 레이스를 짜다가 남편을 맞이하곤 했었다. 문제는 종종 안개가 잔뜩 끼는 날이었다. 집 크기도 비슷비슷하고 모양도 별 차이없으니 자기집을 찾기도 힘들어 쩔쩔맸던 것이다. 뭐 별수 있나. 비슷한 집이라도 감으로 찾아 들어가는거다. 목도 마르고 물이나 한잔 할까 해서 냉장고(는 당연히 없었겠지)를 여닫고는 그때서야 깨닫는다. 어머 우리집이 아니네


이 정도는 애교였다. 밤 늦은 시각에 집도 찾기 힘들고 종일 고기 잡느라 지쳤으니 피곤했겠지. 또 아무집이나 찾아 들어가서 씻지도 않고 침구에 눕는다. 여자도 종일 일한지라 곯아 떨어져있다. 남편이 마누라 나 왔소. 하고 얼굴을 보니 아뿔싸 옆집 아줌마구나. 정신이나 말짱하면 다행이지 술이라도 한잔 했음 큰일 날뻔했던 것이다. 이런 웃지 못할 일도 상습적으로 벌어지고 하니 더 두고볼 수 없었던 섬 주민들은 회의를 거쳐 묘안을 낸다. 우리 그러지 말고 집을 좀 색색깔로 칠해서 튀게 하는게 어때?  


 




고의가 아니었어요 (과연 그럴까)



그렇게 부라노의 아기자기한 집들은 서로의 집을 구분하기 위해 화려한 색깔로 칠하면서 시작되었다. 모르는 집 여자와의 합방은 우스개 소리로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 일지도 모르지만, 어쨋든 소박하게 고기잡이와 레이스 공예로 근근히 살던 베네치아의 작은 섬은 그렇게 알록달록한 집들이 알려지면서 베네치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된다. 그러고 보면 관광자원이라는 것도 자연 그 자체인 것도 있지만 인간이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만드는 인공적인 것에도 적용이 되는 것 같다.      






무라노에서 부라노를 가려면12번 배를 타고 가면 된다.




무라노에서 30분 정도 더 가면 부라노에 도착 




섬 입구에 보이는 청동 조각상




부라노 섬에 내리자마자 기분이 너무 좋았다. 눈이 즐거우니 마음도 들뜬거다.



의외로 베네치아 갔다 오면서 사람들이 많이 놓치는 포인트가 바로 부라노 섬일 것이다. 아는 사람만 가는 곳은 아니지만 일정이 짧아서 못갈 수도 있고 배 기다리는 시간과 왔다갔다 하는 시간 그리고 여유있게 둘러 보는 시간 포함 최소 두,세시간 시간이 걸리기에 안 그래도 짧게 잡는 베네치아 일정에서 따로 가긴 힘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확실하다. 베네치아 관광을 하고 난 뒤 여행자들이 올리는 멋진 사진들은 대부분 부라노 섬에서 찍은 사진이기 때문이다그만큼 튀기도 하고 안 들렀다 가기엔 섭한 곳. 특히 여자들 셀카나 여행 인증샷 찍기에 부라노 섬 만한데가 없다. 아이유도 이 먼곳까지 와서 뮤직비디오를 찍고 갔을 정도니..


하지만 예쁘다는 것 외엔 특별히 할게 없기도 하다. 물론 여러가지 행사들, 예를 들면 가면축제 같은 시기가 되면 부라노 섬 역시 축제기간인 만큼 온 마을사람들이 같이 축제에 참여한다. 그 축제는 장소에 상관없이 베네치아 구역이면 무라노 섬이나 리도섬이나 상관없이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그러니 비축제기간일땐 예쁜 집들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부라노에 감흥이 없을지도 모른다. 한달 전 나보다 먼저 여행을 했던 동생이 여기 와보고는 그냥 그렇다 해서 나도 하마터면 건너뛸 뻔했다.


그러고보면 나도 참 특이하다. 예쁜집이나 가게 보면 환장하고 가게마다 전시된 예쁜 그릇, 벽지, 타일 보면 눈 돌아간다. 그런 집기들 많은 스페인 가서 아기자기한 타일들과 접시들 보고 미치는줄 알았다. 그렇다 나는 여리디 여린 소녀취향인가 보다. 






꽃과 살구색 집이 무척 잘어울린다. 근데 집 왼쪽에 페인트칠 새로 하셔야겠다



현재는 자기 집에 페인트 칠을 하려고 해도 베네치아 시에 신고를 하고 해당 구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몇가지색 중에 마음에 드는 색만 골라서 칠할 수 있다고 한다. 부라노 섬이 관광지로 유명해 지면서 마을에 어떤 한가지색이나 비슷한 색 위주로 칠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정책이라고 봐야겠다. 물론 맘대로 못칠하게 하는 대신 페인트 칠하는 비용은 시에서 전부 대준다고 한다.

 



광장을 거쳐가면



수로 사이로 양 옆에 자리잡은 색색의 집들




공 들이지 않아도 엽서같은 사진이 나온다




진짜 엽서




핑크색 집도 있다 ㅋㅋㅋㅋ




부라노는 레이스 공예로 유명했었다. 현재도 수공업으로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 종종 있다






베네치아는 모래사장이 있는 리도 섬만 자연섬이고 본섬, 무라노섬, 부라노 섬 모두 인공섬이다





이쪽 라인이 사진이 예쁘게 나와서 지나가는 할아버지 한분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더니 그 분이 수전증이 있어 못 찍겠는지 옆에 다른 할아버지를 불러서 대신 찍으라고 한다. 근데 옆에 사진을 찍어준 할아버지는 더 손을 떤다. 수전증 대박. 카메라 떨어뜨리는게 아닌가 조마조마 했었다. 


하지만 문명에 때묻지 않은 진정한 부라노 주민이셨다. 그 왜 평생 카메라 한번, 휴대폰 한번 안쓰셨을거 같은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할아버지께서 어찌나 평화로운 미소로 사진을 찍어 주시는지.. 사진으로 그 인자하고 온화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려다가 그냥 내 맘속에 담아뒀다. 가끔은 사진이 아닌 기억에서 상기시키는 모습이 더 아름답기에. 그 분의 표정은 아마 십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거 같다. 


참 손떨림 보정 기능이 있어 사진은 하나도 안 흔들리고 잘 나왔다.   





내가 아마 부라노에 산다면 하얀색으로 칠할 것이다. 왜냐면 이 섬에선 그게 제일 튀니까



저 먹깨비(내 또래 아시는 분만 아심) 나올 듯한 형광색 집은 뭐냐 ㅋㅋㅋㅋㅋ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빨래 널어논 집들. 습도가 높을텐데 마르긴 마르나 보다



그냥 보기만 해도 눈이 정화되는 듯한..




근데 한시간 넘게 다니다 보니 질린다. 




사람이 좋은 것만 해도 질리는데 싫은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






그래서 다리 건너 다른 동네로 갔다. 난 왜 이런 구름다리가 좋을까






산책코스로 다니기 좋았던 돌길. 벤치 하나 있으면 앉아서 책 읽기에 그만인





그래서 바다를 보고 앉아서 잠깐 책보는 시늉이라도 했다.난 지적인 남자니까





부라노 섬의 묘지



부라노 작은 공동묘지에도 있던 피에타 조각상



부라노 섬은 평소엔 워낙 조용해서 솔직히 예쁜거 말곤 전혀 할게 없는거 같다


그래서 예쁜집 마지막으로 보며 눈을 힐링하고



이제 다시 베네치아 본섬으로 간다







안녕! 아름다운 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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