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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훵크와 소울을 비롯해서 현대의 R&B 나 힙합에 이르기까지, 흑인 음악을 비롯한 미국 팝 음악에 있어서 가장 대단한 영향을 미친 아티스트를 꼽는다면 그중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인물은 바로 제임스 브라운일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락앤롤의 제왕이었다면 제임스 브라운은 흑인음악 쪽에서는 그야말로 전설이라 불릴만한데, 이 '마스터'이자 '선구자' 격인 아티스트 제임스 브라운은 대중음악 전반에 걸쳐서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팝음악을 설명할 때 그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훵크음악의 틀을 제시하면서 흑인음악의 시대가 왔음을 알렸고, 90년대 이후 힙합음악이 전성기를 맞았을 때 수많은 소스를 제공한 것도 있겠지만, 60년대 중반을 전후로 당시 대중음악의 대세였던 '멜로디' 중심의 음악에서 '비트' 를 우선시한 음악으로 일종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어쨋든 이 소울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브라운의 등장이후 흑인음악의 발전은 가속화 되었고, 60년대에 후반이후 훵크음악은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중 가장 돋보이던 아티스트는 슬라이 스톤이었는데, 제임스 브라운으로 부터 시작된 훵크 음악은 리더인 슬라이 스톤을 주축으로 한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이라는 밴드에 의해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걸출한 베이시스트였던 래리 그래험이 슬라이 스톤과의 불화로 밴드를 떠났고, 밴드의 수장격인 '천재' 슬라이 스톤 마저도 술과 마약에 빠지면서 스스로 몰락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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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클린턴과 그의 밴드

하지만 제임스 브라운과 슬라이 스톤에 이어 훵크음악의 계보를 이을한만 인물이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조지 클린턴이다. 사실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이후 한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끈 얼스 윈드 앤 파이어나 오하이오 플레이어즈, 그리고 쿨 앤 더갱 같이 훵크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흑인음악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조지 클린턴이라는 인물을 가장 먼저 언급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그가 슬라이 스톤의 계보를 이을만한 새로운 훵크마스터 이기도 했지만, 무려 두개의 밴드를 동시에 운영하면서 훵크음악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고, 또 90년대를 수놓은 닥터드레가 완성한 G-Funk 음악은 물론 힙합음악의 대부분의 소스를 이 조지클린턴이 제공했기 때문이다.

물론 후대에 미친 영향력을 비교해 볼 때 동시대에 활동한 마빈게이나 스티비원더 역시 조지 클린턴에 결코 밀리지 않는 인물들이거나 오히려 그 이상일 지도 모르지만, '훵크의 발전' 만을 놓고 볼 때 조지 클린턴이 더 주목받을만 하다는 것이다.    

조지클린턴은 60년대에 무명생활을 거치면서 스모키 로빈슨 앤 미러클의 세션맨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그가 이발소를 운영하던 시절에 'The Parliaments' 로 밴드를 결성하면서 밴드의 보컬 주자로도 활동한다. 제임스 브라운과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음악에 심취해 있었던 그의 음악인생에서 전환점을 맞이하는 맞이하는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히피족들인 밴드멤버들이 대거 합류하면서 마침내 훵카델릭이라는 밴드가 탄생한 것이다.  

조지클린턴은 훵카델릭 외에도 팔러먼트라는 밴드를 동시에 운영하며 활동했다. 재미있는 것은 두개의 밴드 구성원은 거의 같았지만 차이가 있다면 각각의 밴드가 추구하는 음악성향이 상당히 달랐다는 사실이다. 우선 팔러먼트가  P-Funk, 즉 Pure Funk 라 불리는 조지클린턴이 추구하는 흑인음악 특유의 훵크 음악을 했던데 반해, 훵카델릭은 이름에서 볼 수 있듯 훵크와 사이키델릭을 비롯한 그외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뒤를 이을만한 훵크락, 즉 흑인에 의한 락음악을 추구하는 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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훵카델릭의 변화

훵카델릭은 세번째 앨범인 Maggot Brain(1972) 을 통해 입지를 단단히 굳힌다. 이들은 이 앨범의 성공이후에도 많은 변화를 맞이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여겨 볼만한 일은 바로 베이시스트인 부치 콜린스가 밴드에 합류했다는 것이다.

부치 콜린스는 제임스 브라운의 밴드에서 활동했던, 훵크음악 역사상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뛰어난 베이시스트다. 제임스 브라운-부치 콜린스 와 슬라이스톤-래리그래험 콤비 이후 훵크 음악 역사상 가장 대단한 라인업이라 할 수 있는 조지 클린턴-부치 콜린스는 그야말로 말이 필요없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훵카델릭은 에디 헤이젤이나 톨 로스같은 멤버들이 조지클린턴과의 불화와 그외 여러가지 문제로 밴드를 떠나는데, 훵카델릭은 악재를 극복하고 이들 최고의 앨범인 One Nation Under a Groove(1978) 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다.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부치콜린스의 합류와 조지클린턴이 만든 또 다른 밴드인 팔러먼트의 활동 이후 훵카델릭은 보다 상당히 댄서블한 리듬이 추가되면서 훵카델릭은 또 한번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부치 콜린스의 가입으로 훵카델릭은 한층 그루브하고 댄서블한 음악을 선보인다. 그의 부드러우면서도 쫄깃쫄깃한 터치는 조지클린턴과 그의 밴드의 음악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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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Nation under a Groove

이 앨범은 셀프타이틀인 'One Nation Under a Groove'로 첫 포문을 열고있다. 댄서블 하고 흥겨운 이곡은 가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만의 방식으로 춤춘다' 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그루브 안에서는 인종,성별,나이 가릴꺼 없이 모두 하나' 라는 조지클린턴의 재미있는 발상이 돋보이는 곡이기도 하다.

'One Nation Under a Groove'라는 단 하나의 싱글로도 훵카델릭의 이 앨범은 대단한 가치를 지니지만, 역시 부치 콜린스의 터치가 흥겨운 'Groovallegiance'는 필청곡이다. 그리고 '누가 훵크밴드가 제대로 연주 못한다더냐' 면서 이들의 자신감을 표출하는 명곡 'Who says a funk band can't play rock?!' 은 이 앨범의 백미.

게다가 훵크 음악 특유의 반복에서 오는 끈적끈적함이 돋보이는 'Promentalshitbackwashpsychosis enema squad' 과 가장 실험적인 트랙인 'Lunchmeataphobia (Think It Ain't Illegal Yet)' 도 대단하지만, 개인적으로 추천하고픈 곡은 이 앨범의 마지막에 수록된 'Maggot Brain' 의 라이브버전이다.

특히 'Maggot Brain' 은 필자의 짧은 인생을 통틀어 최고의 곡중 하나로 꼽을정도로 대단한 곡인데, 비록 에디 헤이젤이 나간 이후에 합류한 마이클햄튼이 연주한 라이브지만 그 퀄리티는 오히려 원곡 이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이 앨범을 통해 훵카델릭은 밴드결성 이후 처음으로 플래티넘을 따낸다.(물론 팔러먼트로는 그전에 몇번 플래티넘을 해냈다) 주목할만한 것은 셀프 타이틀 곡의 엄청난 히트는 물론, 앨범 전체적으로 음악적으로도 더욱 성숙하고 또한 흥겨운 음악을 선보이면서 또 다른 밴드인 팔러먼트의 성공과 함께 조지클린턴이 얼마나 뛰어난 존재인지 부각시킨 앨범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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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사실 훵카델릭은 물론 팔러먼트와 그외 조지클린턴의 음악은 앨범보다도 영상을 구해서 들어 보는것이 더욱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팔러먼트와 훵카델릭을 비롯한 조지클린턴의 대부분의 공연은 무지막지한 물량공세로 말 그대로 '우주쇼'를 방불케하는 공연을 연출했기 때문.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는 조지클린턴이 앨범판매로 얻은 수익을 모조리 공연에 투자해서 그에 대한 적자로 인해 동시에 운영하던 두 밴드를 해산하고 솔로활동을 시작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규모나 질에 있어서 다른 공연들과 차원을 달리한다.

조지 클린턴은 목소리 만큼이나 외모와 행동 역시 '외계인'스러운 기인이었고, 50여명에 이르는 수많은 인원을 10년가까이 통제할정도로 대단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멤버들과의 조화를 중시하면서도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탁월한 음악성은 그가 지금도 '훵크대마왕' 으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이다.    

조지클린턴의 특유의 의상과 머리장식, 괴상한 무대매너 그리고 환상적인 퍼포먼스. 그는 두개의 밴드의 운영과 이후에 솔로활동으로 훵크를 비롯한 흑인음악의 발전은 물론 현대 음악 자체에 거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많은 교류가 있었던 프린스와 자신이 직접 프로듀서로 참여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 같은 훵크락 아티스트들은 물론 이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닥터드레나 아이스 큐브를 비롯한 여러 힙합 뮤지션들을 살펴 본다면 훵크=조지 클린턴 과 같은 공식이 떠오르는것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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