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아 생전에 야구나 축구같은 구기종목에서 우승하는걸 보게 될 줄이야! 그것도 올림픽 같은 큰 무대에서 전승우승이라니.. 진짜 믿기지가 않는다. 그것도 거의 베스트 멤버로 나온 아마최강 쿠바와 영원한 숙적 일본을 두번이나 깨고 금메달을 딸줄은 상상도 못했다. 역시 야구는 멘탈 스포츠고, 이런 팀 스포츠는 단결력이 생명이다
무엇보다도 선발 당시 부진으로 야구하는 돼지라며 대표팀 뽑힌 이후에도 계속 비아냥이나 듣던 이대호가 잘해서 너무 기쁘다. 대회내내 삽질하다가 결정적일때 홈런을 날려준 이승엽선수도 마찬가지고. 어제 일본전과 오늘 쿠바전 두번의 투런홈런은 앞으로도 절대 잊지못할 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제 오늘 선발로 나와서 잘 막아준 김광현, 류현진 선수 정말 고맙다. 베테랑인 박찬호, 손민한이 아니라 김광현, 류현진이라 기분이 더 좋다.
오늘경기의 수훈갑은 역시 류현진. 쿠바를 상대로 거의 완투를 해준건 불펜이 불안한 한국에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 이 부분은 역시 어제 일본전에서 8이닝동안 2실점으로 틀어막은 김광현도 마찬가지다. 나이도 어린 선발투수들이 역투를 해준건 금메달을 딸 수 있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우승은 대회내내 활약한 선발투수들의 공이 매우 크다.
승부처는 9회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승부를 결정지은것은 9회가 아니라 1회였다. 쿠바와 한국의 메달 색깔을 바꾼것은 1회에 나온 실책 하나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1회초 쿠바의 실책은 결과적으로 한국에게 두점짜리 홈런을 만들어주었고, 1회말 2루타성 타구에서 이승엽의 호수비 이후 곧바로 쿠바의 솔로홈런이 터졌기 떄문. 그리고 한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김경문 감독의 타선배치는 정말 기발했다고 밖에는 할말이 없다. 어제 일본과의 경기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쿠바 투수가 왼손사이드암 인데도 불구하고 1~4번은 좌완, 5~9번은 우완으로 타순을 배치했다. 하지만 정석을 무시한 김감독의 의외의 시도는 주효했고 결국 두번 다 경기에 이기면서 성공했다.
느낌상 경기에서 이길꺼 같았는데 긴장이 된건 역시 한국의 불펜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정대현이나 오승환 한기주같은 구원투수들이 모두 정상이 아니고 몇경기 마무리로 뛴 윤석민도 사실 불안하기 짝이 없다. 예상대로 9회말엔 그야말로 극장을 연출했다. 하마터면 주심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제대로 안해줘서 이 극적인 드라마의 조연이 될 뻔했다. 류현진이 안타를 맞고 무사 1루 상황에서 계속해서 투수를 교체하지 않았던 좀 의외였지만 경기가 끝나고 김경문 감독님 인터뷰를 들어보니 이해가 간다. 정대현 선수의 몸상태가 그리 좋지 못한 관계로 정말 웬만해선 교체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
참 그리고 9회말 위기일발 상황에 강민호가 퇴장당했을때 사람들은 강민호를 욕했을 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강민호의 항의는 적절했다고 본다. 결정적으로 강민호가 어필하지 않았다면 류현진 이후 등판한 정대현 투구때 주심이 2번연속으로 스트라이크 판정을 해주진 않았을꺼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민호의 퇴장은 돌발상황이지만 오히려 팀에 전화위복이 되었다. 김경문 감독이 배터리 교체를 하게 만들었고 1사 만루에 쿠바가 분위기를 몰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 흐름을 단번에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어쨋든 결론은 이겼으니 대쓰요.
아.. 너무 할말이 많지만 감격에 겨워서 더이상 글을 못쓰겠다. 무슨말이 필요할까 우승했는데. 단 한경기도 빼놓지 않고 매번 극적인 경기로 가슴을 졸였지만 결국 한번도 안졌다. 마지막으로 금메달을 안겨준 김경문 감독님과 대표팀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당신들이 바로 챔피언 입니다
고마워요 한국야구!!
[김경문 감독]
“어리벙벙하다. 대통령께서 전화를 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소리만 계속 했다. 솔직히 금메달은 생각 못했다. 4강에 들어서 메달을 따서 고생한 선수들이 보람을 느꼈으면 하는 게 처음 목표였다. 금메달의 원동력은 팀워크였다. 특히 고참들이 좋은 버팀목이 돼 줘서 좋은 경기 할 수 있었다. 정말 너무 기쁘다.”
“9회말엔 류현진이 경기를 끝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윤석민이나 오승환이 몸 상태가 안 좋았고, 류현진 공이 괜찮길래 계속 올렸다. 만루되고 나서 이거 병살타 아니면 지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대현이 정말 잘 해줬다.”
“어젯밤에 벌거벗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인터뷰하는 꿈을 꿨다. 중요한 곳은 가렸다.(웃음) 오늘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나쁜 꿈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훌륭한 결과를 맺게 돼 기쁘다.”
[이승엽](1회 결승 2점 홈런)
“믿기지 않는다. 우리 선수들 너무 잘했다. 오늘 정말 훌륭한 경기였다. 후배들이 부담감 잘 이겨낸 것을 칭찬하고 싶다. 항상 TV에서 남들 금메달 따는 장면만 봤는데 내가 금메달을 딴 게 믿기지 않는다. 내가 예선 때부터 잘 했으면 더 편하게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식구들이 보고 싶다. 특히 아내에게 고맙다. 내가 일본에서 2군에 있어 새벽에 운동하러 나갈 때 아무 말 없이 뒷바라지 잘 해줬다. 이제 내가 보답할 차례다. 그리고 아버지와,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이렇게 좋은 몸과 마음을 갖게 낳아주셔서 고맙다고 하고 싶다.”
[류현진]
“우리가 이겼다. 게임을 끝까지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좋지 못한 상황을 만들고 내려와 좀 속이 상했다. 더그아웃에 들어가 라커룸에 있었다. 그런데 딱 소리에 땅볼이구나 생각하고 뛰쳐나왔다. 커브를 잘 섞어서 던지다가 홈런 맞은 다음부터 바깥쪽 직구 위주로 승부했다.”
[이용규]
“지금 기분은 솔직히 모르겠다. 내가, 우리 선수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정말 최고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때 첫 기회였는데 놓쳤다. 그 때의 실패를 거울 삼아 선수들이 똘똘 뭉친 게 금메달로 이어졌다. 예선 첫 경기 때 미국을 이겨서 술술 잘 풀려나간 것 같다. 원래 안 우는데 어제 일본 이긴 다음 야구선수 되고 나서 처음 울었다.”
[봉중근]
“금메달을 만져보는데 실감이 안 난다. 우리가 동메달도 아닌 금메달을 땄다. 물병에 야구장 흙을 담았다. 이건 평생 간직할 것이다. 마운드가 단단해서 잘 안파지더라.”
[강민호](9회말 퇴장)
“경기 초반엔 스트라이크로 잡아주던 공을 계속 볼이라고 했다. 우리가 올림픽 금메달을 딸 수도 있는 상황에서 심판 장난 때문에 일이 어그러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장 당하기 전 볼넷이 나왔을 때 어이가 없어서 글러브에 공을 꽉 쥐고 있었다. 심판이 빼내려고 하는데 계속 공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공이 낮았냐고 물어보려고 ‘low ball?’이라고 말하니 바로 퇴장시키더라. 너무 화가 나서, 내가 원래 꽤 순한 편인데 마스크랑 글러브 집어 던졌다. 나 때문에 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 퇴장으로 남은 선수들이 더 뭉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진갑용](주장)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이렇게 기쁜데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송승준]
“너무 기쁘다. 인생에서 이보다 더 행복했던 순간은 없는 것 같다.”
[박진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올림픽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땄다.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
[한기주]
“오늘 경기 보면서 선수들이 정말 자랑스럽다는 생각했다. 감동도 받았다. 이번 대회에서 부진했는데 선배 형들이 괜찮다며 격려해 줘 힘이 됐다. 국제대회에서 이렇게 힘들게 야구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내 공에 자신이 있었고, 컨디션도 좋았는데 마운드에서 더 집중했어야 한 것 같다.”
[고영민]
“마지막 수비에서 병살타를 만드는 데 숨이 멈추는 것 같았다. 긴장 됐었고, 아웃이 되는 순간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 솔직히 9회 상황에서 연장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대현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는 것을 보고 감이 좋았다. 이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너무 울어 오늘은 눈물이 안난다.”
[이종욱]
“말할 수 없이 기쁘다. 나 때문에 지는 줄 알았다. 7회 이용규 2루타 때 아웃카운트를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2아웃이었으니 무조건 홈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그래서 머뭇거리다가 3루까지 밖에 못 갔다. 오늘 이겨서 말할 수 없이 기쁘다. 오늘 경기 본 유소년 선수들이 앞으러 더 많이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 “
[김민재]
“말도 안되게 좋다. 진갑용이 부상도 있는데 제일 많이 고생했다. 어제 일본전이 제일 힘들었다. WBC 때 우리가 4강 가고 나서 해이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어젯밤 선수들을 잠깐 모이라고 했다. 긴장 늦추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했다.”
[김광현]
“한국 야구가 첫 금메달을 땄다. 올림픽 마지막 금메달이 될지도 모른다. 너무 행복하다.”
[김동주]
“야구하면서 제일 기분 좋은 순간 같다. 금메달을 따오겠다는 아내와의 약속이 지켜 더 기쁘다. 베이징 오기 전에 아내가 아파서 입원을 했다. 대표팀 빠져야 되나 생각했는데 아내가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했다. 그래서 금메달 따서 오겠다고 약속했다.”
[정대현]
“마지막 타자에게 슬라이더만 3개 던졌다. 2구째가 완전 실투였는데 안 치길래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3구째는 삼진 잡으려고 던진 건데 병살타가 됐다. 올림픽 금메달 경기를 내 손으로 끝내 너무 기쁘고 자랑스럽다. 박진만 형이 공을 잡는 순간부터 시간이 뚝뚝 끊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