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제국, 4년만에 영국을 평정하다.
03/04 시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구단주로 들어온 뒤, 제한없는 투자와 영입을 시작한지 올시즌까지 4년째. 비록 이들은 로만의 염원이던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다시 리버풀에게 무릎을 꿇었고 리그우승마저 맨체스터에게 내주며 3연패에 실패했지만, 칼링컵에 이어 FA컵마저도 차지하며 결국 4년만에 영국에서 얻을 수 있는 타이틀을 모두 얻었다.
첼시가 올시즌 거듭된 악재속에서 경기력은 비록 최근 2년간의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팀으로의 스피릿을 보여주며 '쉽게 이길 수 없는 팀으로 더욱 단단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을 상기시킨다면, 작년까지만 해도 '돈으로 산 트로피' 라고 비아냥 거렸던 이들도 단지 돈 만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첼시가 올 시즌에 완전히 갖추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것이다.

양팀의 라인업
아이러니 하게도 타이틀을 위해 데려온 발락과 세브첸코 모두 부상으로 오늘 경기를 비롯한 중요한 컵경기에서 결장하게 되면서 첼시는 05-06 시즌 당시에 활용하던 4-3-3 포메이션 으로 경기를 시작한다. 차이가 있다면 주전 수비수 카르발료의 부상으로 에시앙이 그 자리를 메꾸고 미드필드에는 올시즌 급성장한 미켈이 자리잡았다는 점.
맨체스터는 AC밀란과의 4강전과 비슷한 라인업으로 경기를 준비했다. 퍼거슨에게 희소식이라면 '수비의 핵'인 퍼디난드가 회복하여 비디치와 완벽한 수비라인을 구성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경기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콤비가 가동되면서 첼시의 공격수 드록바는 100분이 넘게 별다른 활약을 못했고, 맨체스터의 수비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견고했다.
뉴 웸블리 스타디움에서의 결승전
뉴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처음 갖는 FA컵 결승전 경기인 만큼, 경기 시작전부터 두 라이벌 팀의 경기는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98/99 시즌 트레블 이후 7년동안 더블을 못했던 퍼거슨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4번째 더블을 노렸다.
반면 무리뉴는 자신의 커리어에 FA컵 타이틀을 추가 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생명 연장' 을 위해서라도 이 경기는 결코 놓칠 수 없는 경기였다. 절박함에서 약간이라도 첼시가 앞선던 것 만큼은 분명하다.
강한 압박, 양팀의 차이
시작과 동시에 두 팀은 미드필더 장악에 많은 신경을 쓰면서 조심스럽게 경기를 운영한다. 두 팀 모두 수비에 힘이 실린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팀 컬러는 확연하게 다른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첼시는 우선 드록바에게 용이하게 볼을 투입되지 않을 것을 간파하고, 미드필더에서의 볼 소유권을 늘린 뒤 견고한 맨체스터의 수비를 무너뜨리기 위해 양 사이드의 조콜과 숀 라잇 필립스에게 사이드 공략을 맡긴다.
하지만 맨체스터가 숫자 싸움에서 약간 더 우위를 잡은 이유로 조콜이 별다른 활약을 못하면서 드록바는 거의 고립되는 모습이었고 그 여파로 첼시는 공격을 제대로 전개하지 못했다. 게다가 맨체스터의 한두번의 원터치 패스와 롱볼에 잘 대처하지 못 하면서 오히려 역습을 허용한다.
반대로 맨체스터는 미드필드 숫자를 늘린만큼 첼시와 대등하게 경기를 운영하면서 스콜스와 캐릭의 정확한 킥으로 첼시의 빈 공간을 노렸다. 여기서 루니가 오프사이드에 걸린 것은 맨체스터로서는 아쉬워 할만한 장면이었다.
맨체스터의 공격루트는 상당히 단순한 편이었다. 중앙에서 상대의 뒷공간을 노리는 로빙패스와 사이드에서의 호나우도와 긱스의 크로스 이 두가지를 집중적으로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데, 크로스는 중앙에서 받아줄 타겟맨의 부재로 별다른 소득이 없었고 스콜스의 로빙패스는 그보다는 훨씬 효율적이고 위력적이었으나 몇번씩이나 간발의 타이밍으로 오프사이드에 걸리고 만다.
다만 공격의 날카로움에 있어서 맨체스터는 퍼거슨의 기대에 제대로 못 미친것으로 보이는데 오른쪽의 긱스는 별다른 활약을 못하며 기회를 거의 잡지 못했으며, 왼쪽의 호나우도는 자신의 특기인 드리블에 주력하며 공격의 템포를 늦추는 플레이를 하면서 많은 찬스를 잡지 못했다.
몇 차례 역습을 노리던 두 팀은 거의 대등한 경기운영을 하지만, 각각 강한 수비로 이렇다 할 유효슈팅 기회조차 잡지 못하면서 이들은 무의미하게 전반전을 마친다.
흥미진진했던 후반전
두 팀중에 먼저 카드를 빼든 것은 조금이라도 더 트로피가 필요 했던 무리뉴 감독이었다. 단단한 맨체스터의 수비진을 붕괴하기 위해선 조콜 보다는 빠른 윙어의 투입이 필요한것을 간파한 감독은 하프타임을 마치자 마자 과감하게 조콜을 빼고 로벤을 투입한다.
이 교체는 보기 좋게 적중했는데, 전반전에만 하더라도 거의 수비에 치중하던 브라운과 플레쳐를 비롯한 미드필더까지 가세한 협력수비로 인해 별다른 기회를 얻지 못했던 조콜과는 반대로 로벤은 맨체스터의 오른쪽 라인을 차례로 파괴하며 후반 시작하자 마자 여러차례 찬스를 잡는다.
이에 대해 맨체스터는 역시 롱볼을 활용하면서도, 전반전에는 원톱으로 고립되는 모습을 보였던 웨인 루니가 미드필더까지 내려오며 많은 활동량을 보인다. 맨체스터의 유기적인 패스워크는 후반들어 상당히 좋아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루니가 전반전 보다는 상당히 많이 볼을 잡게 되면서 맨체스터의 공격은 날카로움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후반 시작하자 마자 루니의 강력한 슈팅과 이후 두차례의 위협적인 드리블 돌파와 후반 종료직전 맞은 기회는 체흐의 선방과 첼시의 협력수비로 무산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긱스도 다이렉트 슈팅을 날리며 맨체스터는 기선을 제압한다.
이에 대한 첼시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페널티 에어리어 부근에서 얻어낸 셋피스 상황에서 드록바의 킥이 골 포스트에 맞으며 분위기를 반전 시켰고 후반 41분에는 램파드가 상대 수비의 실수를 유도하며 골에 가까운 장면을 만들기도 한다.
여러번 밀물과 썰물이 빠져나가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며 전반전과는 반대로 상당히 치열하면서도 재미있는 경기양상으로 이끌어가던 양팀은, 드록바의 슈팅이 골포스트에 맞는 등 골 운이 따르지 않았고 결국 득점에 실패하면서 연장전에 돌입한다.
3년 연속 연장전
04-05 시즌 아스날과 맨체스터의 경기와 작년의 리버풀과 웨스트햄의 결승전에 이어 3년연속으로 연장전을 가진 이번 FA컵 결승전은,카디프에서 열린 지난 두 결승전 경기의 박진감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경기 스코어를 떠나서 시간이 지날 수록 흥미진진한 양상을 띈다.
연장전에서는 후반까지 경기력에서 조금은 앞섰던 첼시보다도 맨체스터가 많은 기회를 잡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선수는 스콜스였다. 스콜스는 올시즌들어 가장 최상의 컨디션으로 팀의 공격을 주도했는데, 특히 그의 롱패스의 정확도는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게다가 후반이후 폼이 살아난 루니의 활약에 힘입어 맨체스터는 연장 전반 13분에 결정적인 찬스를 얻는다. 호나우도의 패스를 이어받은 루니의 낮은 크로스를 무인지경의 긱스에게 연결한 것. 하지만 오늘 긱스는 호나우도와 마찬가지로 정상이 아니었다.
후반에 맞은 2번에 걸친 기회를 모두 놓치는가 하면 이번에는 천금같은 루니의 크로스를 제대로 건드리지 못하며 또 다시 천금같은 기회를 무산시킨다. 공이 라인을 넘어선 것으로 보이지만 약간의 골키퍼 차징이 있었으니 골로 인정했다고 하더라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장면이었다.
첼시의 결승골
기회를 놓치면 바로 화를 입는다고 했던가. 맨체스터의 공세이후 경기는 첼시는 그보다 더 위협적인 모습으로 맨체스터에 반격을 가했다. 연장 전반 종료직전 로벤의 크로스에 이은 드록바의 헤딩슛이 옆 그물에 맞으며 경기 흐름을 반전 시켰고, 이를 기점으로 조금씩 경기의 주도권을 자신들에게 가져오게 만든다.
이는 연장 후반 8분, 교체투입된 칼루의 슈팅이 골문을 살짝 빗나가면서 더욱 골에 근접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로 부터 2분 후에 맨체스터의 미드필더에 순간적으로 빈틈이 생긴것을 첼시는 놓치지 않았다. 디디에 드록바가 램파드와 멋진 월패스를 시도하며 깔끔한 피니쉬로 뉴 웸블리 경기장에서의 첫골이자 이 경기의 결승골을 작렬시킨 것이다.
드록바는 지난 아스날과의 칼링컵 결승전에서 2골을 넣었던 것에 이어 FA컵 결승전에서도 결국 결승골을 넣으며 시즌 두번째 우승컵을 자신의 힘으로 가져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스트라이커인 크레스포와 세브첸코를 밀어내며 주전으로 팀에 공헌한 것은 물론, 이 경기에서의 골은 팀에서 누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시키는 순간이었다.
맨체스터, 57년만의 패배
맨체스터는 마침표를 찍어줄 선수와 미드필드 에서 상대의 흐름을 끊어줄 선수의 부재가 결승전의 패인이었다.
경기를 조금이나마 더 주도했던 첼시보다도 맨체스터는 더 위협적인 찬스가 많았지만 마무리 지어줄 선수가 없었던 것은 두고두고 아쉬워 할 만하다. 하그리브스의 영입이 눈앞에 다가온 맨체스터는 이번 여름을 통해서 루니의 엄청난 활동반경과 폭발적인 드리블을 살리면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루니의 파트너가 반드시 필요하다.
카디프에서 아스날에게 승부차기로 패한이후 퍼거슨 감독은 뉴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다시 한번 쓴잔을 마셨다. 게다가 포르투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리뉴 감독에게 지난시즌 한 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혜성같이 등장한 포르투갈 출신의 젊은감독이 보통 내기가 아닌것을 다시 한번 실감해야 했다.
첼시가 FA컵에서 맨체스터에게 승리한 것은 50년 FA컵 6라운드에서 2:0 으로 승리한 이후 무려 57년만이다.
첼시의 2관왕. 그리고 무리뉴
앞으로 여름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는 미지수 이지만, 첼시는 올시즌을 거치면서 이들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을 이미 성취했다. 그것은 부상이 닥치고 경기력이 안 좋아도 포인트를 얻어내는 꾸준함과 수 많은 경기에서 동점과 역전을 해내던 팀 스피릿, 그리고 세브첸코와 발락같은 슈퍼 클래스의 선수들을 오게끔 만드는 매력적인 빅팀으로서의 진화이다.
물론 올시즌 첼시는 로만의 등장 이후 벌써 4년째 빅이어는 물론이고 리그타이틀 방어에도 실패하며 많은 비판을 들었다. 하지만 못한다 못한다 하더라도 이들은 칼링컵과 FA컵 2관왕은 물론 리그 2위에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올랐다. 과연 이것들을 무리뉴 감독 없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아무리 3년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못하고 있지만, 그의 말대로 무리뉴는 떠날 이유가 없다. 아무리 악재가 겹치더라도 올시즌 무리뉴는 첼시에서 이 정도 성적을 낼수 있다는것을 다시 한번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첼시에 이만큼 최적화된 감독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한마디로 현 상황에서 첼시에게 필요한 감독은 무리뉴 뿐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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