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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앨범은 어떤 종류의 앨범인가? 아마 음악을 가리지 않고 들어왔더라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며, 아트락에 대해 잘 알고 있어도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드물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핑크플로이드, 킹크림슨, 예스 그리고 제네시스와 같은 아트락/프로그레시브 락 입문서나 다름없는 밴드들을 접한 이후 "더 들을거 없나? " 하면서 거의 필수적으로 접하는 밴드를 언급할 때 열에 아홉은 여기 이태리 밴드인 오산나(또는 오잔나)의 이름을 입에 올릴 것이며, 그와 동시에 꼭 한번 거쳐가게 되는 앨범중에 바로 오산나의 2번째 작품인 'Milano Calibro 9' 이 꼽힌다는 사실이다.

물론 오산나의 최고작을 꼽는데 있어서 이 앨범을 선택하는것이 망설여지는걸 보면 확실히 'Milano Calibro 9' 는 그들의 음악을 놓고 평가함에 있어서 약간은 애매한 위치에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사실 그도 그럴것이 이 앨범은 오산나의 정규앨범이긴 하다만 페르난도 디 레오(Fernando Di Leo)가 감독을 맡은 동명의 영화 'Milano Calibro 9' 의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으로 제작되었기 때문.

재미있는 사실은 R.D.M 이나 뉴트롤스의 앨범에 참여했던 유명한 영화음악감독인 루이스 엔리케즈 바카로프(Luis Enriquez Bacalov) 가 이 앨범에 참여했다는 것인데(아마 바카로프는 잘 모르더라도 올리비아 핫세 주연의 영화 섬머타임 킬러에서 흘러나온 'Run & Run' 이나 'Like A Play' 라는 곡 정도는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인지 이 앨범에는 데뷔앨범인 ' L'Uomo ' 에서도 볼 수 있었던 오산나의 거친 성향과 바카로프의 서정적인 음악 취향이 공존한다.

앨범을 플레이하면 산만한 플룻 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Preludio'이 초반부터 청자를 압도한다. 상당히 치밀하게 짜여진 첫곡을 지나 뒤에 이어지는 곡은 굉장히 쓸쓸한 느낌이지만 아름다운 멜로디의 피아노연주와 현악편곡이 인상적인 'Tema' . 특히 이곡은 중반에 이어지는 기타 및 드럼 연주를 유심히 들어보길 바란다.

세번째 곡인 'Variazone I (To Plinius)' 부터 'Variazone VII (Posizione Raggiunta)' 까지 진행되는 일명 ' Variazone'  시리즈는 난잡함과 무질서의 연속이다. 특히 차갑고 날카로운 'Variazone I (To Plinius)' 에 뒤이어서 바로 비교적 따뜻한 느낌의 'Variazone II (My Mind Files)' 가 잠시 쉬어가라는 듯 차분하게 이어지는가 하면, 잠시 마음을 놓고 편하게 들을 무렵 갑자기 돌변하며 무거운 연주를 이어가는 식이다.

그뿐 아니라 첫곡에서 잠시 선보였던 엘리오 다나(Elio D'anna)의 정신없는 플룻은 'Variazone III (Shuum...)' 과 'Variazone IV (Tredicesimo Cortile)'에서 동료들의 연주와 함께 절정을 이룬다. 이어지는 곡들도 마찬가지로  불친절하다고 밖에는 어울리는 말이 없다.

앨범을 한번이라도 들어보면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는 사실이지만 곡을 쓰는데 있어서 바카로프의 손이 더 많이 닿은 세 곡 'Preludio', 'Tema', 그리고 'Canzona '와 날것의 느낌 가득한 'Variazone' 시리즈와의 거리는 은근히 멀어 보인다. 각각의 노래들 역시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앨범 전체적으로도 정돈이 잘 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Variazone' 시리즈를 별 탈없이 듣고나면 "그동안 좀 정신 없었지? 불편한 음악 듣느라 수고했어" 라고 속삭이는 듯한 'Canzona (There Will Be Time)' 가 흘러나온다. 다른 노래에 비해서 상당히 차분한 이유로 약간은 이질적인 느낌이 강한 이곡은 뉴트롤스의 'Adagio' 보다도 더 많이 들었을 정도로 정말 좋아하는 노래다.

이 앨범을 온전히 다 듣고난 뒤에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Canzona' 에서 리노 바레티(Lino Vairetti)의 목소리가 주는 감동은 뭐라 말로 설명을 못할 정도. '노래 한곡 때문에 앨범 전체가 빛난다' 는 말이 실감나는 오산나의, 아니 이태리 아트락을 대표하는 명곡이다.

물론 이 앨범 역시 다른 아트락 음반들과 마찬가지로 국내에선 지나치게 과대평가 되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물론 오산나가 대단한 밴드인것 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오산나의 'Milano Calibro 9' 앨범이 이렇게도 인지도가 높은 것은, 단지 'Canzona' 가 뉴트롤스의 'Adagio' 와 함께 국내에서 특히 많은 인기를 끈 곡이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마치 사랑의 쌀쌀맞음에 꽁꽁 얼었던 마음이 상대의 따뜻한 한마디 말에 눈녹는 듯한 상황을 연출하듯, 앨범을 들으며 날카로워진 기분이 깐초나 한곡에 풀리는 것을 애써 즐기는 나같은 사람이 적지 않아서일까?  특정한 계절이 되면 어김없이 먹게되는 음식이 있듯이, 역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오산나의 'Milano Calibro 9' 에 손이 가는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추운 날씨에 들을 만한 앨범? 그리고 추천할 만한 노래? 더 설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난 이 앨범과 깐초나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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