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의 음악은 가난한 음악이다. 세션도 평범하고 가사는 물론 음악풍도 한 2~30년 전, 그 당시에 유행했던 곡이라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게 없다. 하지만 처음에 싱글 앨범인 <싸구려 커피> 앨범을 들었을 때는 기분이 참 묘했다. 가사도 착착 귀에 감기고 리듬도 좋음에도 불구하고 어째 들으면서 즐겁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가사에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난 장기하의 음악이 앨범 제목대로 '싸구려 커피 같아서' 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마셔왔던 것 처럼 값싸고 달짝찌근한, 마치 아침마다 한잔씩 뽑아 마시는 싸구려 자판기 커피 같아서. <싸구려 커피>는 원두커피를 즐겨마시는 이들에게도 낯설지 않지만 빈 속에 먹기엔 살짝 부담스럽다.
장기하의 음악은 또한 미지근한 음악이기도 하다. 여기서의 미지근함이란 싱거움이나 밋밋함과 또 다르다. 오히려 진득한 맛이 난다. 마치 장기하가 동경하는 배철수씨의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인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잠시 광고듣고 오겠습니다" 하는것과 같이 말이다.
<싸구려 커피>는 여유와 솔직함을 지향하고 있기도 하다.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시대에 장기하는 '느리게 걷자' 고 하고 있으며, '정말 없었는지' 에서는 옛 사랑을 추억하며 "한번만 더 보고 싶었어" 라고 한다. <싸구려 커피>는 이렇듯 친근하고 구수하다.
그래도 꼬질꼬질한 일상과 꺼내 보고싶은 추억 그리고 여유가<싸구려 커피>의 전부는 아니다. 그래서 이 싱글앨범에 있는, 신중현의 '커피 한잔'과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 가 동시에 생각나는 '싸구려 커피' 같은곡은 정말 놀라울 뿐이다. 이 노래는 끊어질 듯 하면서도 플로우를 타며 계속 말을 이어가는, 어눌하면서도 뻔뻔함마저도 느껴지는 그의 화술과도 많이 닮아 있다. 이색적이지만 낯설지는 않고 아무나 쉽게 들을 수 있으면서도 참 재미있다.
장기하는 '싸구려 커피'에서 능숙한 솜씨로 라임을 맞추고 플로우를 탄 나레이션과 가창을 뒤섞으며 긴장과 이완을 자유 자재로 넘나드는데, 특히 중간에 랩과 나레이션의 그 중간쯤에 있는 듯한 장기하의 멋진 랩핑(?)은 판소리의 아니리를 연상시킬 정도다. 물론 판소리 공연을 하는 것처럼 듣는 이를 울리고 웃기고 하는건 아니다만 이 노래는 사람을 쥐락 펴락 하는 뭔가가 있다. '싸구려 커피'는 큰 부채를 쥐고 접었다 폈다하며 불러도 정말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싸구려 커피>는 김창완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고 송창식과 신중현의 변주일수도 있다. 아니 누구 말마따나 싸구려 커피로 채운 청춘의 허기 일지도 모른다. 도저히 장르를 구분해 낼 수 없는, 또 공감이 가기에 씁쓸할 수밖에 없는 음악. 그래서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는 이 어려운 시대에 위로가 되는 청춘가고, 동시에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넘치는 '수공업 소형음반' 인 것이다.
작년에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 요청금지. 올해는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
붕가붕가 레코드가 정말 사랑스럽다.
장기하와 얼굴들 / 싸구려 커피 (EBS 스페이스 공감)
'달찬놈 싸구려 REMIX (Live) 완성판'
장기하와 얼굴들 / 달이 차오른다, 가자 (2008 쌈싸페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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