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거의 리빌딩과 새로운 아스날의 완성

축구 이야기 2008. 3. 6. 09:16 Posted by 루이스피구






딱 3년전으로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서 04/05시즌으로 가보자. 아스날의 상대는 로만과 무리뉴를 앞세워 잘 나가고 있던 첼시. 최근에 유럽축구를 보게 된 분들은 생소할지도 모르겠다만 이때 첼시와의 리그 홈경기는 낮은 앵글에 관중석과 피치와의 간격이 거의 없는 하이버리에서 펼쳐졌다.

결과는 2:2. 더비경기 인것과 앙리의 더블을 제외하면 그리 눈에 들어올만한 것은 없는듯 싶지만 한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비에이라, 에두, 질베르토 실바를 대신해서 아스날의 중원을 채우고 있는 선수는 다름아닌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마티유 플라미니. 바로 현재 아스날의 주전 미드필더들이다.

물론 앞선 세 선수가 부상과 경고누적으로 빠지게 된건 사실이지만, 이 경기에서 두명의 중앙 미드필더가 첼시에게 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상당히 주목해 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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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벵거는 비에이라와 에두를 내보내고 흘렙을 영입하면서 세스크를 중심으로 팀을 개편했다.

이는 두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첫번째로 벵거가 무패우승의 아스날에게서 한계를 느꼈기에 이젠 유럽에서도 통하는 팀을 만들겠다는 것이고, 두번째로 자신의 축구철학인 공격축구를 계속해서 이어가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물론 에미레이츠 경기장의 규격에 대한 감안도 있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근거는 아슨 벵거가 비에이라와 에두를 지킬 수 있었음에도 이적시키고, 공격권과 점유율을 계속해서 유지하는데 중요한 요소인 바로 볼을 잘 다루고 정확한 패스를 할 수 있는 선수들을 이후에 중용하는 모습에서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리빌딩에 들어간 아스날은 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른다. 비록 리그에서는 피지컬을 중심으로 싸움을 걸어오는 팀들에 대해 부진하지만, 세스크와 흘렙 그리고 앙리를 중심으로 한 아스날은 챔피언스리그에서 더이상 약한 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한마디로 유럽에서도 통하는 팀이 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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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이어 아슨 벵거는 세스크와 흘렙, 로시츠키라는 창의적인 선수들과는 반대로 아데바요르와 플라미니라는 옵션을 장착한다. 새로운 선수의 영입이 아닌 기존의 선수의 업그레이드를 통한 전력의 강화. 벵거의 생각은 어쨋든 결과적으로 적중했으며 아데바요르와 플라미니를 통해 아스날은 많은 볼 소유권은 물론이고 왕성한 활동량으로 무패우승시절과는 조금은 다른 측면에서 자신들이 지배하는 경기를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런앤건 중심의 프레싱 사커에서 포제션을 중시하는 축구로의 전환이다.  

설명하자면 무패우승시절 아스날이 앙리,피레스,융베리는 물론 심지어 중원에서의 비에이라마저도 강력한 피지컬과 빠른 스피드로 자신들의 페이스로 경기를 끌어오다가 순간적으로 상대의 빈틈을 노려 제압해 버렸다면, 이제는 볼을 잘 다루는 선수들의 정확한 패스워크와 많은 활동량을 통해 어느 구역에서든 항상 수적 우위를 점하고 좀 더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통해 어떤 팀을 상대해더라도 미드필드를 장악하며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속공 형태의 무패시절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형된 뉴 아스날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예전의 아스날은 확실히 역습에 강한 팀이었지만 동시에 상대 역습에 약점을 노출한 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수비라인 자체가 다른 팀들에 비해 높은 것은 여전하지만 예전과 마찬가지로 6명, 7명이 공격에 가담하더라도 한, 두번의 패스로 치명적인 찬스를 허용하는 경우가 확실히 적으며, 경기 템포와는 상관없이 언제든지 빠르게 공수를 전환할 수 있는 팀으로 변모하였다. 비록 역습의 속도는 느려졌을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는 지금이 더 세밀하며 정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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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전에서 아스날은 4-5-1 포메이션을 들고 나온다. 아데바요르 원톱에 흘렙의 2선 지원, 그리고 중앙지향적인 4명의 미드필더가 그 밑에서 받쳐주는 형태이다. 흘렙은 내가 자주가는 모 커뮤니티에서 한때 '무조건 왼쪽'을 외치던데, 내 생각은 예전부터 말했듯이 많이 다르다. 흘렙은 원래 위치를 떠나 수비 부담이 적을때 훨씬 굉장한 모습을 보여줬고 분데스리가 시절부터 사이드보다는 원톱 혹은 투톱의 바로 밑에서 더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어쨋든 밀란전에서의 선수구성은 평소 변칙적인 전술운용 보다는 크게 틀을 벗어나지 않은 카드를 꺼내드는 벵거에게 최선의 선택이었고, 원정임을 감안할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포메이션 이었다. 부상자가 많아서 가용자원이 적었지만 다행인점은 벵거의 전술에서 키 역할을 하는 아데바요르, 흘렙, 플라미니, 그리고 세스크가 모두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90년대가 압박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 현대 축구는 '탈압박의 시대' 이다. 그에 대한 부분은 월드컵과 유럽선수권대회, 그리고 최근 유럽클럽 대항전들을 보면 쉽게 드러나는 부분인데 어제 밀란전에서 아스날이 보여준 경기는 그 탈압박의 좋은 예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대가 점유율을 늘리지 못하게 패스가 도는 길목에서 커트를 해내고 공을 빼앗아내면 곧바로 공수를 전환하고 압박이 들어오기전에 트라이앵글을 형성하여 패스로 그 압박을 무력화 하는것은 물론, 공격전개를 빠르게 가져가면서 많은 활동량으로 항상 수적 우위을 지닌채 경기를 이끌어 가는 아스날의 공격패턴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체력적인 면에서 밀란을 당황하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밀란전은 벵거의 꿈인 경기장에서 아름다운 축구가 이어지는 모습에 가장 부합하는 경기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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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날이 보여준 경기력은 가공할만한 것이었다. 2:0이라는 스코어가 문제가 아니다. 10년 넘게 유럽 클럽대항전을 봐왔지만 원정경기에서 그것도 산시로에서 이렇게 멋진 경기를 펼치며 밀란을 압도한 팀은 없었다. 멀리까지 갈 것도 없이 작년에 맨체스터는 같은 경기장에서 밀란에게 0:3으로 완패했고, 그 전시즌에 뮌헨 역시 1:4로 무릎을 꿇지 않았던가.  

최근 5년간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던, 디펜딩 챔피언 밀란을 상대로 잉글랜드 클럽의 산시로 징크스를 아스날이 깼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심판의 오심과 세스크의 슈팅이 골포스트에 맞지 않았다면 아스날은 전반전에 경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밀란은 아무래도 04/05 시즌이 피크였던거 같다. 물론 안첼로티가 완성해놓은 전술과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덕분에 지난시즌 다시한번 유럽 정상에 설 수 있었다만 하락세라는 것을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어제 경기는 패스의 정확도, 활동량, 공수전환은 물론 역습에서도 밀란이 아스날에 완패한 경기다. 이 한경기로 밀란의 시대가 끝났다는 소리를 할 수는 없겠지만 리빌딩이 필요하다는 것은 명명백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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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히어로는 세스크 파브레가스였다. 피를로와 가투소가 버티고 있는 밀란을 상대로 중원을 완벽하게 장악했으며, 흘렙과 함께 여러번의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어냈다. 특히 현재 유럽에서 누가 가장 높은 클래스에 있는 선수인지를 몸소 증명하는 결승골은 발롱도르와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카카가 무색할 정도였다. 이제 아스날과 벵거의 아들이 아닌 유럽의 황태자로 우뚝 선 모습이다.  

내 네이버 이웃이신 비타주리님은 세스크가 훌륭하지만 기복이 있는 선수라고 하셨는데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다만 난 세스크가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도나 램파드와 같이 빅팀과의 경기에서 약한 선수가 아닌 컨디션에 따라 활약도의 차이가 큰 선수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보통 훌륭한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를 나눌 때 내가 판단하는 기준은 가장 잘할때와 못할때의 편차가 얼마나 적느냐 하는 것이다. 세스크는 올시즌만 봐도 맨체스터와의 홈 경기와 리버풀과의 원정경기에서 최악의 컨디션이었지만 결정적인 골을 넣었고 이외에 경기력이 기대에 못미치는 수준이더라도 이름값은 충분히 해왔다. 그렇기에 월드클래스 선수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세스크는 기복이 있긴 하지만 어느팀을 상대로도 얼마든지 훌륭한 경기를 할 수 있는 선수라는 거다. 아마 피로로 인한 불안정한 경기력은 몇년뒤면 자연스레 해결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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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07/08 시즌 전에 아스날 만큼 미래가 불투명한 팀도 없었을 것이다. 데이빗 데인 부회장은 쫒겨나다시피 물러났고, 앙리는 바르셀로나로 떠났으며 벵거 역시 재계약을 미루고 있던 상태였으니.

그리고 레만을 대신해서 넘버원을 차지한 알무니아와 (물론 레만의 자업자득이나 다름없었지만, 무냐의 선발출장은 구너에게 꾸준히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고 있다) 질베르토 실바에 대한 벵거의 냉대는 벵거에 대한 불신을 배가시켰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부주장이었고 앙리가 나가고 난뒤 큰 무리없이 이어받을 듯했던 질베르토가 캡틴자리를 뜬금없이 갈라스 뺏긴것은 상당히 의외의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항상 2% 부족해 보였던 플라미니에게 세스크의 파트너 자리를 맡긴것은 어이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밀란과의 16강전 2경기를 보고나서 플라미니가 주전자리를 꿰찬것은 질베르토 실바가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하면서 벵거의 심기를 건드린 것 때문이 아닌, 확신을 가지고 이어온 그의 플랜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밀란전은 벵거가 플라미니를 비롯한 어린 선수들을 기다려 준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플라미니 얘기를 잠깐 하자면 이 친구는 현대축구에서 가장 중시되는 덕목이 피지컬이라는 것을 몸소 증명하는 듯하다. 경기를 읽는 눈이 뛰어나거나 테크닉이 훌륭한 선수는 아니지만 흘렙과 함께 아스날의 역습의 속도를 가속화 하는데 필수적인 선수이며,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활동량으로 세스크의 고립을 막아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격루트의 다양화를 위해서 꼭 필요한 선수다.

 아마 테크닉과 전진패스능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아마 플라미니같이 매 경기 12Km이상(플라미니의 평균 활동량은 무려 14Km가 넘는다) 뛰는 선수가 있다면 감독은 그 어떤 선수보다도 이 선수를 첫번째로 기용할 것이다. 물론 세스크의 파트너로는 그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에시앙이 더 이상적이겠지만, 에시앙은 오버래핑시 침투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고 중거리 슈팅 시도에 비해 성공률이 높아서 그렇지 활동량만 따져보면 플라미니가 실제로는 에시앙보다도 더 많이 뛴다. 한마디로 벵거 입장에서는 질베르토 실바보다도 플라미니를 선발로 쓰는게 당연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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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거의 리빌딩은 성공적이다. 밀란전은 05/06 시즌부터 이어져온 아스날의 축구가 지난해 칼링컵과 비시즌기를 거쳐 올시즌에 들어 완성단계에 도달했음을 전 유럽에 알린 경기다. 물론 아직 부족한 모습도 보이지만 아스날의 축구가 훌륭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이제 우리는 그들의 경기를 즐기는 일만 남았다.  

다만 훌륭한 팀은 반드시 트로피를 가져와야 한다. 아무리 좋은 경기를 해도 승리하지 못한다면 그 의미는 퇴색할 것이며, 시즌 내내 멋진 퍼포먼스를 펼치더라도 우승하지 못한다면 역사는 그들을 금방 잊어버릴것이 분명하다. 아스날의 무패행진이 위대한 것은 바로 그 시즌에 우승을 했기 때문이다.  
 
아스날은 앞으로 살인적인 일정이 기다리고 있고 챔피언스 리그는 물론 리그에서도 아직 우승을 언급할 시점이 아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챔피언스리그 8강진출에 성공했고, 프리미어리그에선 승점 1점차로 1위에 있다는 것이다.

아스날의 우승은 이제 로빈 반페르시와 토마스 로시츠키의 복귀에 달려있다.
그리고 여기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활약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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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iamapig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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