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음반회사들과의 저작권 문제로 결국 실패했지만 몇년 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서는 서기 3000년, 그러니까 약 천년후 개봉을 목표로 현 시대상을 반영할 상징물들을 타임 캡슐에 봉인하는 작업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이 역사적인 작업에는 시대적인 사회상과 문화의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대중음악 역시 그 상징물에 포함되었고, 이것의 선정을 위해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과 퀸시존스 등이 참여했다.

퀸시존스는 여기에 들어갈 3장의 음반을 꼽았는데, 그 3장의 앨범은 다음과 같다. 단일 앨범으로는 현재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중인 마이클잭슨의 'Thriller' 와  전에 소개했었던 마빈게이의 'What's going on'  그리고 나머지 한 자리를 차지한 앨범이 바로 스티비원더의 'Songs in the key of life'  였다.

퀸시존스를 잠깐 설명하자면 마이클잭슨의 'Off The Wall'를 시작으로 자신의 앨범인 'The Dude'와 이어서 마이클잭슨의 'Thriller', 'Bad' 를 연이어 대히트시키고 85년 아프리카 난민돕기 프로젝트인 'We Are The World' 작업을 직접 프로듀싱한 팝계의 거물이다. ('We Are The World' 뮤비에서 지휘를 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퀸시존스이다. 위의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우리시대 최고의 프로듀서가 타임캡슐에 들어갈만한 앨범중에 하나로 스티비원더의 앨범을 꼽았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터인데, 그렇게 높이 평가받는 'Songs in the key of life'  의 진가를 알기 위해선 다른 설명보다도 직접 앨범을 듣는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정말 지나가는 얘기가 아니라 '음악' 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고 특히 흑인음악을 좋아한다면 이 단 한장의 앨범이라도 꼭 사서 들어보길 바란다. 스티비원더를 좋아하든, 그 반대이든 이 앨범은 그 어떤 앨범보다도 소장가치가 크다.  
 





                               

지난 얘기에서 소개한 Fulfillingness' First Finale (1974)앨범의 활동을 마친 스티비원더는  모타운과 다시 한번 재계약을 마무리지은 후 2년이 넘는 준비 끝에 더블 앨범인 Songs in the key of life(1976) 을 발표한다. 사실 놀랍게도 스티비원더는 자신의 가수생활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에 심한 회의감에 빠져 은퇴를 고려 했었다고 한다. 즉, 이 앨범은 스티비원더가 은퇴를 고려하던 시기에 만든 앨범이란 소리다.   

물론 스티비원더는 은퇴하지 않았고 다시한번 모타운과 앨범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저작권과 관련 엄청난 개런티를 보장 받게된다. 스티비원더 외에도 팝의 역사를 살펴보면 거물 뮤지션들은 대부분 큰 계약을 성사시킨 후 또는 자신들이 새로 레코드사를 설립한 이후에 주로 금전적인 이유에 의해서 더블 앨범을 내놓는 경우를 많이 볼 수있다.

이에 대한 예는 Apple 사를 설립하고 The Beatles 타이틀의 일명 화이트 앨범으로 불리는 더블앨범을 내놓은 비틀즈, 그리고 역시 Swan Song 을 만든후에 Physical Graffiti를 발매한 레드제플린, 자신을 가석방 시켜준 서지 나이트의 데쓰 로우사와의 계약후 랩뮤직 사상 최초로 더블앨범인 All Eyez on Me 를 만들어낸 투팍 등 셀 수 없이 많다.

물론 정규앨범으로 더블앨범을 내놓는것은 그만큼 누구도 흉내내지 못한 만큼의 대단한 음악적 역량을 요하며, 창작자의 전성기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작업인 것 만큼은 확실하다.

다만 위에 언급한 더블앨범들 모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앨범들이고 내용물 역시 훌륭한것은 물론 대중음악 역사에서 정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것은 분명하지만, 스티비원더의 앨범과는 달리 어느 한 부분에선 약점을 보이는것 만큼은 명백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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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비틀즈의 앨범은 그들의 천재적인 영감을 쏟아 낸것만큼은 틀림없지만 그들의 매니저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사망후에 비틀즈 멤버간의 사이가 극단적으로 악화된 시기에 나온 앨범이었고, 앨범자체는 결국 천재적인 음악성으로 현재 그들의 최고의 앨범중 하나로 높이 평가받지만 멤버간의 불화가 밖으로 표출된 백화점 식의 '멤버 개개인의 솔로모음집' 이라는 시선만큼은 피할 수없다.

레드제플린은 레코드사 설립 이후 상업적인 모색으로 만든 앨범이지만 의외로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당시로써는 상당히 실험적인 성격의 앨범이었다. 다만 이들의 뛰어난 음악성이 배어있는 Physical Graffiti는 그들의 최고의 앨범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더블앨범으로써 가치가 떨어지는 이유는, 이 앨범이 지난 앨범들에서 누락된 곡들 실은 이유도 있겠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훌륭한 앨범의 수준에 비해서 강력한 싱글이 전작들에 비해 적은것은 물론, 전체적인 완성도 적인 측면에서 '몇몇곡은 더 추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투팍의 앨범은 옥살이 중에 앨범차트 1위에 오른 Me Against The World 로  서지나이트의 도움을 받아 보석금으로 풀려난 후 완성한 앨범이다. All Eyez On Me는 힙합 역사상 최초의 더블앨범이자,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최고의 힙합앨범중 하나로 꼽힐만한것은 분명하다. 물론 한 두곡 앨범의 수준에 못미치는 곡이 있긴하지만, 전체적으로 굉장한 앨범인것은 분명하며 더블앨범임에도 700만장이 넘게 팔렸을 정도로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하지만 투팍은 이 앨범을 통해 이전의 그의 내면에 담긴 소박한 얘기나 서정적이고 섬세한 감정을 드러내던 가사에서 볼 수 있는 여린 모습은 완전히 잃어버렸다. All Eyez On Me 당시의 투팩은 음악적으로도 굉장한 수준이고 그의 감춰진 역량을 볼 수 잇는것은 물론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서지나이트의 이미지 메이킹에 의한 만들어진 갱스터 힙합전사로써의 활동은 어떻게 보자면 상당히 작위적인 느낌이다.  






그에 반해 이 글에서 소개할 스티비 원더의 Songs in the key of life 는 그 어느 하나 흠잡을 부분이 없다. 위의 아티스트들이 뭔가 '다른 이유'나 '의도'에 의해 더블앨범을 발매한 것에 비해 스티비원더의 이 더블앨범 작업은 오직 자신의 욕심과 여태껏 쌓아온 음악적인 역량을 아니 자신의 모든것을 쏟아붓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이 앨범을 들어본다면 그의 최고작임을 실감케 하는것은 물론 동시대에 나온 앨범들중 최상위권에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것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놀라운것은 위의 더블앨범들은 밴드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거나 특히 투팩의 앨범은 스눕독, 네이트 독, 닥터드레, 도그 파운드의 다즈는 물론 우탱클랜의 메쏘드 맨과 케이씨&조조로도 모자라 심지어 조지클린턴까지 참여하는등 다수의 프로듀서들과 엄청난 피처링 진이 참여한 '물량공세'로 빚어낸 성과물이었던 반면, 스티비의 이 앨범은 더블 앨범임에도 그가 혼자 모든 곡을 쓰고 앨범 전체를 거의 혼자 맡아서 작업했다는 사실이다.

90년대 최고의 프로듀서중 한명인 베이비 페이스는 스티비원더에 대해 비틀즈는 네 명이었지만 스티비는 한 사람으로서 그 몫을 다 해냈다고 존경을 표시하기도 했으며, 엘튼 존은 이 작품을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앨범이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이 앨범은 모든 면에서 매우 풍성하다. 특히 메시지적인 측면에서는 이전의 앨범부터 관심을 보여왔던 '사랑', '인종차별 문제', '정치,사회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 그리고 '흑인 사회에 대한 고찰' 까지  당시 스티비원더의 시선으로 본 70년대 중반 사회상을 솔직하고 또한 세심히 표현하고 있다.  

스티비원더가 이 앨범에서 노래하는 곡들의 대표적인 주제는 바로 '사랑' 이다. 연인간의 사랑은 물론,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헌정곡 'Sir Duke', 이웃에 관한 사랑을 노래한'Love's in need of love today', 딸아이와 그를 낳은 연인에 대한 축복을 표현한 'Isn't she lovely', 신에 대한 믿음을 여전히 드러낸 곡 'Have A Talk With God',어린시절 추억을 노래한 'I Wish', 친구간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Kocks me off my feet' , 심지어 인생과 변함없는 사랑을 여러가지 상황에 빗대어 노래한 'As' 등 여러부분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과 사랑에 대한 주제의식을 더욱 구체화한다.

그리고 스티비원더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역시 '흑인사회' 와 '인종차별 문제' 다.  이 부분은 흑인들의 어려운 사회상을 그려낸 'Village ghetto land', 쿨리오(Coolio)가 후에 'Gangster's paradise' 로 리메이크해서 잘 알려진 비장미 넘치는 'Pastime paradise', 그리고  이 시대에 필요한것은 흑인, 백인의 구분이 아닌 모든 인종의 화합과 조화임을 일깨우는 무려 8분이 넘는 대곡 'Black man'에서 잘 나타나 있다.







Songs in the key of life 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스티비원더 특유의 대곡취향을 기반으로 한 음악성은 물론이고, 그의 대중적인 감각 또한 전혀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앨범은 전작인 Fulfillingness' First Fnale 앨범이 다소 싱글에선 밋밋한것을 보상받기라도 하는 듯한 느낌의 강력한 곡들이 즐비하다.

특히 첫번째 CD에서 이어지는 듀크 엘린턴에 대한 헌정곡 'Sir Duke'를 시작으로, 윌스미스가 부른 영화 Wild Wild West의 동명주제곡에서 샘플링으로 사용한 훵크넘버 'I Wish', 발라드 풍의 'Kocks me off my feet', 그리고 'Pastime paradise' 로 이어지는 첫번째 앨범의 곡들은, 단언컨데 마이클잭슨 Thriller (1982) 의 'The Girl Is Mine', 'Thriller',  'Beat It',  'Billie Jean'  에 비견될 수 있는 유일한 트랙 구성이다.

첫번째 앨범이 보다 대중적이다면, 자신의 딸 Aisha에게 선물하는 'Isn't she lovely' 로 시작되는 두번째 앨범은 심험적인 면에 보다 투자한 듯한 느낌이다. 이색적인 남국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Ngiculela-Es Una Historia-I Am Singing'  과 신비한 느낌의 'If It's Magic'  을 제외하면 나머지 곡들은 모두 6분이 넘는 대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작들에서부터 이어온 대작휘향의 곡들 중에서도 최고의 곡으로 꼽을 수 있는 'As' 는 그야말로 2번째 CD 의 백미이다.

처음에는 소울풍의 편곡으로 시작되어 정신없이 계속되는 훵크 특유의 반복과 끊임없는 변주로 흑인음악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As' 는 1절은 지극히 일반적인 자연현상에 대입하여는 사랑을, 후렴부의 반복되는 소절은 정반대의 내용인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이 일어나기 전까지 자신의 사랑이 변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긁어서 샤우팅을 하는 마지막 후렴부에선 제3자에게 시선을 돌려 사랑을 위해선 진실해야 함을 보다 강조하고 있다.       

 이 노랜 조지 마이클이 나중에 리메이크 한것은 물론이고 그 외에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쳤을정도로 가사, 멜로디, 리듬, 편곡, 연주, 보컬등 모든면에서 압도하는 'AS'는 70년대 최고의 명곡들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걸작이 아닐수 없다. 그리고 'Another Star'는 스티비원더가 콘서트에서 매번 엔딩곡으로 쓸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있는데 젊은시절 조지벤슨의 기타연주와 플룻소리에 귀 기울여 듣는다면 더 큰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연속으로 이어지는 대곡으로 스티비 원더의 역작은 대단원의 막은 내린다.  
 



스티비원더는 이 앨범으로 자신이 꿈꿔왔던 음악에 대한 이상을 실현했다. 2년만에 Songs in the key of life로 3번째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다시 수상한 것은 물론, 여태 자신의 앨범들 중에서도 특히 대중성에도 공을 들인 앨범이라는것을 반영한듯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하며 두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는다.

이 앨범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스티비원더는 2년연속 그래미상을 수상한 후 이 더블앨범을 준비하면서 2년이 넘는 공백기를 갖는데, 그 사이에 앨범을 내고 활동한 사이먼&가펑클의 폴 사이먼은 18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며, 같은해에 앨범을 내지 않은 스티비 원더에게 감사를 표시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 앨범은 한장씩 따로 냈어도 각각 최고의 음반으로 평가될 수준의 앨범이니, 사이먼이 이런 수상소감을 말하는것은 그냥 빈말로 하는것이 아니라 여겨진다. 만약 각각 앨범을 냈다면 전무후무한 4년연속 그래미 제패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Talking Book 을 시작으로 Innervisons 에서 완성된 사운드를 중심으로 여태껏 쌓아온 자신의 내공을 모두 터뜨려낸 Songs in the key of life는 훵크나 소울 같은 흑인음악을 포함한 현재 팝음악을 이루는 모든 소스가 담겨있는 것은 물론, 70년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스티비원더의 야심찬 프로젝트의 성공이자 그의 모든것이었다.

하지만 짧은 기간동안 혹사에 가까운 활동을 하며 기력을 소진한 스티비원더는 이 앨범을 정점으로 서서히 전성기를 마무리하며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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