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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전설. 투츠 틸레망스의 걸작

"나에게 하모니카는 테니스 선수의 테니스공 같은 것이에요. 또 오래된 실내용 슬리퍼 같은 거죠 아침에 아내가 요쿠르트를 갖다주면 그걸 먹고 바로 옆에 있는 하모니카를 가지고 연습을 하죠. 하모니카는 그런 악기에요. 그런 악기가 또 있나요?  세상에 호텔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연습할 수 있는 악기가 하모니카 말고 있나요? 트롬본을 그렇게 연습할 수는 없겠죠."

한국 나이로 이제 여든 일곱살인 투츠 틸레망스는 하모니카와 혼연일체를 이룬, 악기 연주자로는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아티스트다.  실제로 자신의 이름을 딴 투츠 멜로톤(Toots' Mellow Tone) 이라는 하모니카가 제작 및 보급되기도 한 그는 재즈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하모니카의 대명사. 물론 이분은 내한도 여러번 하셨고 국내에서도 꽤나 지명도가 있기 때문에 따로 장황한 설명은 필요 없을 듯 싶다.

지금 소개할 그의 'The Brasil Project, Vol. 2' 앨범은 상당히 대중적인 음악이지만 길고 긴 틸레망스의 커리어를 통틀어 봐도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을만한 작품이다. (제발 올뮤직 평점같은건 무시하자) 이번앨범에도 지난 'The Brasil Project' 앨범과 마찬가지로 브라질의 여러 대가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아마 브라질 쪽 음악을 조금이라도 들어봤던 사람이라면 놀랄 정도로 엄청난 아티스트들이 앨범을 빛내고 있다.
 
브라질의 슈퍼스타들이 대거 합류했지만 'The Brasil Project, Vol. 2' 앨범에서 중심축이 되는 인물은 두 사람이다. 지난 앨범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일스 굿맨과 함께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오스카 카스트로-네비스와 역시  전곡에서 크로마틱 하모니카와 휘파람으로 연주하는 투츠 틸레망스.

특히 오스카 카스트로 네비스는 지난 앨범에서는 절반정도의 곡에 참여한 것에 비해 이번 앨범에서는 거의 전곡에서 기타연주로 참여했는데 이것은 두번째 프로젝트가 앞선 첫번째 프로젝트보다 리듬에 있어서 보다 풍성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에는 카에타노 벨로주가 부른 'Linda' 를 제외하면 모든 곡에 기타연주가 들어가 있다.  



'The Brasil Project, Vol. 2'


이 앨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곡은 이반 린스가 부른 첫곡 'Ce'이다. 굉장히 이국적인 이반 린스의 음색이 인상적인 곡으로, 틸레망스의 하모니카와 이반린스의 허밍스캣이 번갈아가며 카스트로 네비스의 기타와 어우러지다가 마지막에서야 3명이 함께 연주를 함께하며 여운을 남기는 멋진 곡이다.

첫곡에서 남은 진한 여운은 상대적으로 차분한 'Choro Bandido'과 'Retrato em Branco e Preto'로 계속되며, 스산한 분위기는 'Obsession'에서 극대화된다. 이 노랜 개인적으로 원곡보다 투츠 틸레망스의 연주가 들어간 이 앨범 버전을 제일 좋아한다. 그리고 밀톤 나시멘토가 참여한 'Travessia'를 지나 밝은 분위기의 'Flora'에서 앨범의 분위기는 한층 흥겨워진다. 'Flora' 는 몇년전 브라질의 문화부 장관으로 내정되어서 화제가 되기도 한 질베르토 질 특유의 낙천적인 감성이 잘 살아있는 곡이다.  
     
이어지는곡은 앨범에서 가장 멜랑꼴리한 느낌의 'Unconditional Love'. 리 릿나워의 맑은 기타소리와 오스카 카스트로 네비스의 리듬기타간의 조합이 좋은, 그 위에 얹어진 차분한 트럼펫 연주가 멋들어지는 수작이다.

아마 이 앨범에서 투츠 틸레망스의 연주가 가장 많이 들어간 곡이라면 역시 'Papel Mache'을 꼽을 수 있겠다. 여기 참여한 조앙 바스코는 같은 이름을 가진 보사노바의 '신' 조앙 질베르토 때문에 브라질 국내만 제외하면 인지도가 떨어지는 케이슨데, 내 생각에 그의 목소리 만큼은 조앙 질베르토 보다도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빠른 템포의 'O Futebol'도 들을 만한 곡이지만 역시 눈에 띄는 곡은 카에타누 벨로주의 'Linda (Voce é Linda)'. 그가 멋진건 기타 하나와 목소리만으로도 굉장히 품위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Brasil Project, Vol. 2' 에서는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곡으로 참여해서 직접 부르고 연주를 했지만 예외인 곡이 있다. 'Retrato em Branco e Preto'와 'Samba de Uma Nota So'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명곡으로 두곡 모두 엘리안느 엘리아스가 피아노 연주를 맡았다. 이 앨범에서 두곡 이상 참여한 인물은 투츠 틸레망스와 오스카 카스트로-네비스 그리고 엘리안느 엘리아스 세명 뿐이다.

쟈반(Djavan)의 'Oceano'에 이어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은 루이스 봉파의 'Samba de Orfeu'. 그의 감각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이며 'Brasil Project, Vol. 2' 에서 브라질냄새가 가장 많이 나는 흥겨운 곡이라 할 수 있다. 이 곡은 앨범에서 유일하게 투츠 틸레망스가 휘파람 연주로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서늘한 바람과 함께 느끼는 멜랑꼴리의 극치

전작인 'The Brasil Project'가 틸레망스 자신의 커리어와 브라질음악과의 상관관계를 찾는 앨범이라면 이 앨범은 말 그대로 보사노바를 비롯한 브라질 음악을 자신의 입장에서 정리하는 프로젝트다. 마치 그의 오랜 친구인 퀸시존스가 'Back On The Block'을 통해 흑인 음악을 총망라했듯이 말이다.

아마 'The Brasil Project' 를 브라질의 대가들인 조앙 질베르토나 질베르토 질, 그리고 카에타노 벨로주가 기획했다면 투츠 틸레망스가 만든 앨범 만큼, 아니 그 이상의 퀄리티는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생경한 느낌의 보사노바/브라질 음악이 완성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모니카를 통해 해석된 브라질 음악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하다. 이 작업은 브라질리언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는 있었겠지만 이런 식으로 만들 수는 없었을 거라는 말이다.  

좋은 설명이 될지 모르겠지만 굳이 예를 들자면 이런거다. 한국정서를 잘 아는 미국 사람이 한국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상을 찍는다. 분명 이것은 한국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영상물은 미국인 입장에서는 한국을 이해하는데 훨씬 더 객관적인 지표가 될 수 있다. 마치 한국에서 자신의 나라를 홍보하는 영상이 동방예의지국이고 백의민족이라는 등 자화자찬식으로 만들 수 있는데 반해 한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던 외국인이 이런류의 영상물을 찍을땐 그 반대 입장에서 한국을 볼 수 있는것과도 마찬가지다.  

즉, 이 앨범의 가치는 앨범의 퀄리티도 퀄리티지만 벨기에 사람인 재즈 뮤지션 투츠 틸레망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데 있다. 그 어떤 브라질 사람이 만든 브라질음악보다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또 다른 시각에서 본 브라질 음악이라는데 바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The Brasil Project'은 음악팬들에게 더욱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투츠 틸레망스가 브라질 음악에 대해 '아주' 잘 이해하고 있고 앨범에 참여한 인물들이 바로 브라질의 대가들이기에 브라질 프로젝트는 투츠 틸레망스 그 혼자만의 결실이 아니다. 결국 필자가 하고싶은 말은 'The Brasil Project Vol. 2'는 브라질 음악은 물론 보사노바와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유 불문하고 한번쯤은 주목해 볼만한 작품이라는 거다.

그의 하모니카 소리가 어울리는 선선한 계절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이렇게 다시 이 앨범을 꺼내듣는다. 무더위속에서 느끼는 멜랑꼴리의 극치. 산들거리는 리듬에 얹어진 브라질의 정취와 틸레망스의 하모니카 연주.

생각만으로도 정말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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