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싸의 참패
오늘 치뤄진 헤타페와의 코파델레이 준결승 2차전 경기에서 당한 0:4 대패는 올 시즌 바르셀로나의 경기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경기로 꼽힐만하다. 바르싸는 수비진의 집중력 부족과 경기를 풀어나가는 실마리를 전혀 찾지못한것은 물론, 경기내내 졸전을 거듭하며 무기력한 모습으로 헤타페에게 무릎을 꿇었다.
물론 5경기가 남아있는 현재 1위에 위치해 있는것을 보면 이들의 저력은 무시할수 없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조기탈락하고 오늘 코파 델레이에서마저 떨어진것은 그들의 팬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결과이다.
지난시즌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에서 더블을 기록하며 유럽 최강의 면모를 과시하던 바르셀로나가 1년도 안되서 이렇게나 안 좋은 시기를 겪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물론 바르셀로나의 부진이 한가지만으로 설명할 수없다. 하지만 현재 그 여러가지 원인을 살펴본다면 지금 순간은 바르셀로나에게 있어서 단 한시즌만이 아닌 앞으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인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호나우디뉴와 에투의 문제
누캄프의 심장은 분명 캡틴 푸욜이겠지만, '승리' 하는것과 관련지어 본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바로 팀의 아이콘인 호나우디뉴와 그의 파트너 사무엘 에투일 것이다. 현재까지 3년째 같은 팀에서 뛰며 지난시즌까지 많은 골을 합작한 이 콤비는 중요한 경기에서도 결정적일때 '한방' 을 터뜨려주는 것은 물론, 메시와도 스위칭을 번갈아가면서 변화 무쌍한 움직임을 보이며 상대 수비를 공략했다.
메시가 열씸히 뛰어준다 해도 이 둘이 제대로 움직여 주지 못하면 바르싸의 공격력이 절반이하로 감소하는것은 자명한 일. 올시즌까지 정말 수많은 경기를 뛰면서 떨어진 호나우디뉴의 체력은 월드컵 이후 제대로 된 휴식을 갖지 못하게 만들며 바르셀로나의 경기력에 큰 영향력을 미쳤고, 거기에 에투의 장기부상까지 겹친것은 바르싸에게 치명타로 작용했다.
부상보다 더 중요한것은 둘의 권력 다툼이다. 에투는 부상에서 복귀한후 한동안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자신이 활약에 비해 대접을 못받고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 이는 둘중에 하나는 한팀에서 공존할 수없음을 시사하는것과 동시에, 앞으로 리빌딩이 불가피하다는것을 직감케 했다. 누가 그랬던가 두개의 태양은 공존할 수 없다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라포르타 회장의 글로벌 마케팅과 관련해서 최근 부진한 호나우디뉴보다는 에투가 이적할 공산이 크다고 본다. 하지만 그의 이적과 빈자리를 메울 대체선수는 어떤식으로 이루어질지 아직 의문 투성이로 남아있다.
그리고 바르싸의 공격력의 감소를 가져온것은 슈퍼서브로써 경기를 뒤집는 역할을 잘 해줬던 라르손의 이적이다. 그의 대체자로 데려온 구드욘센의 전술이해도가 떨어지는 모습은 에투의 부상과 맞물려 악재로 작용했는데, 첼시에서 여러가지 역할을 맡으며 활약했던 그가 제 몫을 못한것은 레이카르트 감독으로써는 큰 근심거리로 남았을것이다.
게다가 바로 1년전만해도 세계최고의 선수로 평가됐던 호나우디뉴가 월드컵에서 부진한 이후로 줄곧 자신감이 떨어진 모습으로 일관하며 부진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부족한 훈련량으로 몸이 제대로 안 만들어진것은, 최근 브라질 대표팀의 10번을 받으며 대표팀과 밀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카카와 비교해서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데코가 가지는 의미
필자는 바르셀로나의 전술의 핵심이 호나우디뉴-에투-메시로 이어지는 쓰리톱이 아닌
데코와 싸비를 중심으로 한 미드필드 라인에 있다고 본다. 특히 03-04 시즌 포르투에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선사한 후 이적한 데코가 바르셀로나에서 맡고있는 역할은, 단순히 미드필드의 한자리 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데코는 볼터치와 키핑력이 굉장히 좋은 선수이다. 게다가 기술마저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선수가 바로 데코인데, 요한 크라이프가 이미 칭찬한 바와 같이 이 선수의 기술이 높게 평가되는 이유는 데코는 불필요한 개인기가 아닌 그 경기 상황에서 꼭 필요한 테크닉만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데코는 경기에서 싸비와 함께 팀의 점유율을 늘리는 것은 물론 상대의 패스 길목을 차단하며 수비에도 가담하는등, 정말 많은 활동량을 보이며 상대적으로 피지컬적인 측면에서 떨어지는 바르셀로나의 허리에 생기를 불어넣는 롤을 수행하고 있다. 다재다능함 그것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그의 존재는, 쓰리톱과 싸비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은 바르셀로나 전술의 핵심 그 자체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데코는 찬스가 생기면 어김없이 공격에 직접 가담하며 적지 않은 골을 기록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면에서의 공헌도는 물론이고 해결사적 기질마저 갖춘 모습은 그가 '슈퍼데코' 라는 별명을 가지게 할 만하다.
데코의 부진과 그의 대체자의 부재
위에서도 밝혔듯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데코의 올시즌 상대적인 부진은 바르셀로나의 경기력에 있어서 총체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이 부분은 크게 네가지로 간추릴 수 있을것이다.
첫째, 데코는 호나우디뉴와 마찬가지로 월드컵이후 제대로 된 휴식을 갖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올시즌 서른줄에 들어선 것을 드러내기라도 하듯이 최근 들어 피지컬이 상당히 떨어진 모습을 보인다.
둘째, 지난시즌까지 2년째 바르싸가 비슷한 패턴의 전술을 큰 변화없이 이어간것은 상대팀은 바르싸의 약점을 하나 둘씩 찾아내게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우선 데코만 막으면 된다' 는 상대의 첫번째 방안은 바르싸의 데코에게 집중되어 있는 맞춤형 전술의 주요한 공략법이되었다. 이는 상대팀들의 데코에 대한 견제와 맞물리면서 그의 유례없는 부진이 이어지는데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셋째. 지난시즌부터 바르셀로나는 데코의 공백을 메우는 방안을 아직까지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전술적인 변화로 일시적으로 해결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때 테크니컬한 미드필더들의 유기적인 움직임과 호흡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레이카르트의 전술을 앞으로도 이어나갈 것이라면, 싸비의 부상을 이니에스타로 메웠듯이 데코가 없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경기력을 꾸준히 이어가는 방안을 찾는것이 급선무이다.
게다가 데코의 나이가 적지 않은것을 본다면 장기적으로 그 자리를 채워 줄 선수를 빨리 찾아 내는것이 여름 이적시장에서 바르셀로나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렇게나 데코에 대해서 세세하게 언급함은 바르셀로나의 올시즌 전력이 떨어지는 것을 데코의 탓으로 돌리는것이 아니다. 다만 데코가 그만큼 바르셀로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을 또 한번 강조하는 것뿐.
넷째, 데코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동료를 활용하는 능력과 예측하지 못하는 플레이다. 전체적인 팀의 경기력이 떨어지고, 자신의 플레이가 읽힐때 그는 빛을 잃는다. 지금의 무기력한 경기로 일관된 바르셀로나에서 그는 결코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없다. 썩은 생선에 소금이 무슨 소용이랴.
레이카르트의 전술변화. 그 결과는?
올시즌 바르싸의 전력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부상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레이카르트의 전술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
올시즌들어 바르싸가 보여주는 경기양상은 대부분 비슷했다. 초반에 득점에 성공한후 연이은 추가골이 잘 들어가는 날엔 대승을 거두고, 반대로 그 흐름을 잘 지속하지 못하는 경기에선 충분히 승리할 수 있는 경기조차도 주도권을 내주며 자멸하는 양상을 띄었다는것이다. 이것은 리버풀과의 1차전이나 리그에서 맞붙은 강팀들과의 경기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레이카르트는 리버풀과의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전술적 결함을 그대로 노출했다. 아무래도 실전경험이 떨어지는 윙백없는 쓰리백을 이 경기에서 가동하는데, 크라이프의 드림팀시절 사용했던 구성과 어느정도 유사점을 지닌 이 전술은 결국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실패로 돌아간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쓰리백의 혼용은 에투의 부상과 데코의 부진을 메꾸기 위한 임시방편 또는 팀의 떨어지는 경기력을 메꾸기 위한 과정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전술의 완성도가 떨어짐을 나타낸다.
레이카르트가 새로운 전술을 실험하기 위해서라면, 시즌 초반부터 이어오지 않고 왜 하필 중요한 컵이 달려있는 경기에서 선수들의 호흡이 떨어지는 포메이션을 구성했을까? 어디까지나 결과론이지만 바르싸가 탈락한것은 리버풀의 베니테즈의 전술이 뛰어난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1차적으로 레이카르트 감독의 실수가 아닐까?
그리고 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면 레이카르트 감독은 첼시나 리버풀과의 경기를 비롯해서 여러 경기에서 이해할 수 없는 교체를 선보인다. 특히 리버풀전에서는 데코나 싸비의 컨디션이 좋았음에도 결국 8강진출에 실패했는데, 이는 레이카르트의 팀전술에 문제가 있다는것을 증명한다.
지극히 정상적인 전술이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교체와 이어지는 실험. 레이카르트는 라리가 2연패에 작년에는 특히 더블을 기록하는등 성적면에서 좋은면을 기록했지만 반할감독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팀 스피릿의 문제
올시즌 바르싸의 문제는 위에서도 밝혔듯이 단 한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이는 주요선수들의 부상과 새로 이적한 베테랑들과의 잘 맞지 않은 호흡뿐만이 아닌, 여러가지 다양한 전술의 실험이 가져온 혼란과 선수들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것을 해결하지 못함에서 비롯된 일이다.
우선 바르싸는 지난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면서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이룬 상태다. 하지만 슈퍼컵에서 같은 리그팀인 세비야에게 완패하는등 올시즌 이어진 바르셀로나의 전력은 아직 실질적으로 유럽최강으로 불리기에 조금 부족함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완성된 팀이 계속해서 좋은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승리를 위한 지속적인 집착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투지가 동반되어야 한다. 지난 1차전에서 5:2 대승을 거뒀다고 만족하는 모습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전시즌만해도 수많은 경기에서 바르셀로나가 역전을 해내던 모습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멀리 엔리케가 은퇴하기 전까지 안가더라도 지금에 바르셀로나에서 푸욜을 제외한 어느선수가 팀을 위해 희생하는 플레이를 하는지 궁금하다. 스포츠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것이 정신력인데 올시즌의 바르셀로나는 그 부분에서 실격이다.
게다가 에투의 돌발 행동이나 도움이 되지 못하는 발언으로 바르싸는 팀스피릿이 안좋은 상태이다. 에투가 여름에 팀에 남을지 떠날지는 모르겠지만 팀의 주전스트라이커이자 대부분의 골을 넣어주는것 보다도 감독과 구단주는 팀의 장악력에 관한 부분을 신경써야 한다. 이것은 에투 문제 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 해당되는 문제다.
곪은 부분에 약만 바르기 보다는 절개를 통한 수술이 필요한때가 바로 지금이다.
글을 마치며
헤타페전에서의 대패가 꼭 바르샤의 실패를 의미하는것은 아니다. 아직 바르셀로나는 리그우승에 대한 가능성이 높은 상태이고 3연패를 기록한다면 이에 대한 비판은 다시 수그러들지도 모른다. 다만 올시즌 바르싸의 전력은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는것이 사실이고, 오늘 경기에서의 전력은 그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냥 넘어갈 수없는 숙제를 남겼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는 말이있다. 바르셀로나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그에 따른 고통은 올시즌을 치르면서 여러 대회에서 안좋은 성적을 거두며 경험하고 있다.
이들의 미래가 밝을지 어두울지는 좀더 두고 봐야겠지만 기대가 되는것은 이미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있는 완성된 팀이기 때문이고, 앞으로도 충분히 개선해 나갈 수 있는 능력있는 감독과 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구단주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현재로썬 리그우승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바르셀로나로써는 미래에 대한 준비도 소홀히 할 수없다. 영원한 라이벌 마드리드는 물론 전통의 강호 발렌시아와 최근 전력이 급상승한 세비아 또한 무시할 수없는 팀인만큼 다음시즌 리그는 물론 유럽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선 앞으로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다가오는 여름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미지수이지만, 유럽의 여러 강호들과 함께 바르셀로나가 가져올 이적시장에서의 행보는 그만큼 관심거리가 될 것이라는 만큼은 무엇보다도 분명한 일이다.
'축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앙리, 4박 5일간의 추억 (28) | 2007.06.04 |
---|---|
챔피언스리그 영국클럽 최고의 경기 Best 10 (33) | 2007.05.23 |
앙리를 팔아선 안되는 세가지 이유 (14) | 2007.04.26 |
완벽한 미드필더 패트릭 비에이라 (11) | 2007.04.14 |
무언의 시위, 그리고 판타지리그 현재순위 (2) | 2007.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