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의 유럽컵 역사를 보면 수많은 경기 수 만큼 명승부들도 역시 즐비하지만 정작 토너먼트의 위로 올라 갈수록 경기의 중요성과 양팀의 조심스러운 경기운영으로 상대적으로 골이 적게 난것은 물론, 특히 결승전 경기들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것 없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경기력이나 재미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만한 승부가 극히 드문 것이 사실이었다.
이러한 챔피언스리그 경기중에서 축구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프란츠 베켄바워나, 미셸 플라티니 그리고 현역감독인 바르셀로나의 레이카르트는 물론, 전 UEFA 회장 요한슨까지. 수많은 전문가들이 최고의 경기라 꼽는 명승부가 있다면 바로 04-05 시즌 리버풀과 AC밀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경기이다.


물론 이 경기는 밀란의 선수들이나 안첼로티 감독 그리고 로쏘네리를 응원하는 밀란의 서포터들로서는 바로 전시즌, 리아조르의 참사와 함께 가장 기억하기 싫은 경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리버풀과의 결승전은 유럽컵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명승부임을 밀란역시 부인할 수 없는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99년 맨체스터가 극적인 역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한 경기나 리버풀이 우승한 이 경기 모두 극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는 명승부인것은 사실이지만, 이 리버풀과 밀란의 결승전을 더 높게 사는 것은 2시간 반에 가까운 이 치열한 경기를 지켜 보게되면 그 이유에 대해 수긍하게 될 것이다.

경기를 라이브로 봤으면서도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는 것은 리버풀이 결승전이라는 단판승부가 가지고 있는 성질을 극복하고, 희박한 가능성의 불씨를 살려서 정말 극적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만들었고 결국 우승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수비력에 무게중심이 잡혀있는 두팀 모두 결승전에서는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하면서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선보이는데, 이 경기에서 무려 6골이나 나온 것은 두팀이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경기에 털어낸 노력에 비하면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당시 두팀의 전력을 짚고 넘어가자면 AC밀란은 02-03 시즌 같은 이탈리아 클럽인 유벤투스에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둔 이후 지금까지 다섯시즌 동안 4번의 준결승 진출과 3번의 결승진출에 성공하는 등, 이탈리아 자국리그는 물론이고 특히 유러피안컵 경기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04-05 시즌 밀란은 시즌 막판 '우승제조기' 카펠로의 유벤투스에 스쿠데토를 빼앗기지만 체력적인 문제로 삐끗했던 것이지,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유럽최강의 면모를 보이던 것을 본다면 토너먼트를 비롯해서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 즐비했던 AC밀란의 전력이 아무래도 리버풀보다는 더 좋았던것이 사실이었다.
반면 리버풀은 리그에서 들쭉날쭉한 전력으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며 결국 더비 라이벌인 애버튼에 밀리면서 시즌을 5위로 마감한것은 물론, 다음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잃으면서 스티븐 제라드의 잔류도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하듯 경기 시작과 동시에 밀란의 캡틴 파울로 말디니가 1분만에 선제골을 넣는등 전반전은 말 그대로 밀란이 리버풀을 압도한다. 이전 PSV와의 경기에서 고전했던 미드필더와 수비진이 경기전까지 상당한 시간을 쉬면서 체력을 회복했고, 이는 경기력의 향상으로 이어지면서 리버풀을 상대로 우세한 모습을 보인것이다.
밀란의 중원은 굉장히 효과적인 패스게임을 이끌어가며 공격을 지원했다. 게다가 카카-세브첸코-크레스포로 이어지는 삼각편대의 공격력은 가공할만한 것이었는데, 전반전이 끝날 무렵 리버풀의 서포터들을 절망적으로 만드는 크레스포의 3번째 골은 말 그대로 쐐기골이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이상황을 돌이켜 보자면 하프타임때 경기가 3:0이나 그 이상의 스코어로 끝날것을 의심한 사람은 아마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베니테스감독과 제라드를 비롯한 리버풀의 선수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한편, 리버풀은 경기초반부터 불길한 징조가 이어졌으니 한골을 내준뒤 얼마 되지도 않아 해리키웰의 부상으로 이른시간에 스미체르로 교체할 수 밖에 없었다는점이다. 베니테즈로써는 4-2-3-1의 한 축이 되는 해리 키웰이 부상을 당하면서 제대로 전술을 수행할 수 없었던 것. 게다가 제라드와 알론소의 중원이 별다른 활약을 못하면서 밀란에게 장악당하며 원톱인 바로스마저 고립되는등 리버풀은 경기를 힘겹게 이끌어간다.
베니테즈 감독은 전반 종료후 공격수를 배치하기 보다는 미드필더를 강화함으로써 반전을 모색하는데, 우선 부상이 있던 피난을 하만으로 교체하면서 쓰리백에 가까운 형태로 후반전에 임한다. 리버풀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밀란이 측면 공격에 추가 실린 팀이 아니기 때문에 제라드를 중앙미드필더와 쉐도우 스트라이커, 심지어 피난의 자리인 측면 수비까지 겸하면서 1인 3역을 도맡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전술은 하만의 투입과 제라드의 열정적인 플레이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후반 직후부터 활기를 띄던 리버풀은 후반 4분, 사비 알론소의 날카로운 슈팅을 기점으로 경기를 자신들의 페이스로 가져간다. 그러던 후반 7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으니 상대진영에서 리세가 재차 크로스를 시도하면서 이를 스티븐 제라드가 평소에 잘 하지도 않던 헤딩 슈팅으로 빠른시간에 만회골을 넣은것이다.
보는 이들을 감동시킬만큼 정말 열씸히 뛰는 제라드의 독려와 함께 만회골로 조그마한 가능성이 생긴 리버풀의 공세는 그야말로 무서울 정도였다. 한 차례 오프사이드 판정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계속해서 밀란의 수비를 공략하던 리버풀은, 결국 하만의 패스를 받은 스미체르가 날린 중거리슛이 디다가 손도 쓸수 없을정도로 기가 막히게 골문으로 빨려들어가며 팀의 2번째 골을 넣는다.
경기를 보는 모든이들이 경악할 만한, 실제로 몇몇 리버풀의 서포터들은 머리를 감싸쥐으며 실감을 못할만큼 그야말로 축구경기에서 일어날 수 없는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리버풀의 공격은 그치지 않았고, 계속된 공세에서 리버풀은 결국 제라드가 페널티킥을 얻어낸다. 이것을 사비 알론소가 차게되고 디다는 세이브를 해냈지만,
알론소는 무시하고 재차 성공시키며 그야말로 극적인 동점을 만든다.
스코어는 3:3. 축구의 신이 있다면 잠시 장난을 쳤다고 밖에는 설명이 안되는, 리버풀이 만들어낸 이 3골은 안첼로티 감독의 표현대로 '광란의 7분' 이었다.










이 7분에 자신들의 모든것을 쏟아부은 리버풀은 급속도로 지쳐갔고, 밀란은 잠시의 충격도 잊은채 다시 전열을 가다듬으며 경기의 주도권을 가져온다. 리세와 세브첸코의 한차례씩 주고 받는 위협적인 슈팅은 양팀의 골키퍼의 손에 막히며 후반전은 이대로 마무리되었고, 양팀은 연장승부에 들어간다.
전,후반에 많은 활동량으로 체력이 떨어진 양팀이기에 연장전에서 두팀의 페이스는 좋지 못했다. 점유율은 AC밀란이 쥐고 있었지만 그리 마땅한 찬스는 잡지 못한다.
그러던 연장 후반 종료직전, 세브첸코의 결정적인 슈팅이 막힌 것은 리버풀의 승리에 대한 일종의 암시였을까? 두덱은 세브첸코의 두번의 결정적인 슈팅을 연속으로 세이브 해내는데, 막아냈다고 하기보다는 공이 와서 맞았다는 표현이 적절한 두덱의 선방에 힙입은 리버풀은 경기를 승부차기까지 끌고간다.


제 3자에게는 흥미로울 수 있겠으나, 양팀의 선수와 감독 그리고 서포터들에게는 잔인한 시간이 바로 승부차기. 결승전의 하이라이트인 승부차기의 히어로는 바로 예지 두덱이었다.
두덱은 동료인 캐러거의 충고를 받아 21년전 리버풀의 전설적인 골키퍼 브루스 그로벨라를 연상시키는 동작으로 밀란의 키커들을 혼란시켜 세르징요와 피를로의 실축을 유도 한다.
게다가 두덱은 마지막 키커 세브첸코의 슈팅까지 막아내며 이 명승부를 자신들의 것으로 가져간다. 그야말로 리버풀에겐 환희의 순간이자, 밀란에게는 지난시즌에 이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21년만의 우승으로 리버풀은 헤이젤 참사 이후 20여년간 참아왔던 울분을 털어내며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린다. 이스탄불에서의 우승으로 상처로 인한 쌓인 감정을 모두 풀어낼 수는 없겠지만, 리버풀의 서포터인 The Kop 에게 스티븐 제라드의 우승 세레모니는 경기의 짜릿함과 맞물려 기억의 한켠에서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아울러 베니테즈와 그의 선수들 그리고 안첼로티과 밀란의 선수들은 물론 이스탄불에서 직접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과 라이브로 시청한 모든 축구팬들은 이 경기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경기의 수준이나 양팀의 선수들의 열정, 그리고 상황적인 측면에서 이 경기는 결승전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대단한 명승부인 것은 물론,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 명제를 직접 실천하고 경기에서 보여준 리버풀의 플레이는 아마 앞으로도 거의 존재하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클래식 매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98-99 UCL Final Manchester Utd. vs Bayern München (8) | 2007.05.19 |
---|---|
98-99 UCL SemiFinal 2nd Leg Juventus vs Manchester Utd. (3) | 2007.05.17 |
97-98 UCL 1st Match Stage Group C 1Round Newcastle vs Barcelona (4) | 2007.05.15 |
01-02 UCL 1st Match Stage Group E 6Round Celtic vs Juventus (1) | 2007.05.07 |
04-05 UCL Round Of 16 2nd Leg Chelsea vs Barcelona (2) | 2007.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