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의 컴백
최근, 정말 오랜만에 양파가 컴백했다. 몇년간 이어진 가요계의 침체기와 신승훈, 김건모 같은 대형가수들의 몰락, 그리고 실력있는 가수의 부재로 '다운 그레이드' 되어버린 현재 가요판을 본다면 이번에 나온 그녀의 신보는 가뭄에 단비 마냥 반갑다.
게다가 소녀같은 모습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아니 양파가 이렇게 예쁘다니"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180도 달라진 그녀의 외모는, 오랫동안 기다린 팬들에게 음악만큼이나 많은 관심을 끈것은 물론이다. 덧붙여 놀라운 것은 예전에 그 애송이 같은 모습이 아닌 대형 여가수로서의 흥행능력과 파급효과 이다.
사실 필자는 앞으로도 그럴것이지만 최신 가요음반의 리뷰를 잘 쓰지 않는 편이다. 왜냐하면 최근 나오는 가요앨범들은 지나치게 소비지향적인 음악인 것은 물론, 음악의 수명이 너무 짧아서 리뷰를 쓸만한 가치가 있는 앨범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파는 예전에 꽤나 좋아했던 가수인데다 10년 가까이 지켜 본 가수인만큼, 이번 5집앨범에서 어떤 점이 포인트가 되는지 한번 신경써서 리뷰를 써보기로 한다.
안정 속에서의 변화
우선 오랜만에 나온 양파의 따끈따끈한 신보는 상당히 예뻐진 외모만큼이나 상당히 세련된 느낌이다. 그 중에서도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하는 그녀의 욕심 때문인지 꽤나 폭이 넓어진 창법과 보다 풍부해진 음역은 그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특히 'Marry Me'는 양파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곡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My Favorite Thing' 과, 시네마 천국의 'Childhood & Manhood' 의 인트로를 연상시키는 왈츠풍의 편곡을 시작으로, 로비 윌리엄스의 'Me & My Shadow' 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스윙감 넘치는 전개를 보여주는 이 곡에서 양파의 목소리는 어색하지 않고, 꽤나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그녀의 색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트랙은 마치 빅마마의 곡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신나는 훵크 넘버 '그녀를 버려요' 이다. 그루브함을 극대화 하진 못했다만 새로움 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곡이다. 또한 쉽게 지나치기 힘든곡은 바로 양파의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잘 어울리는 김진환 작곡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창법의 변화 외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것은 상당히 일취월장한 그녀의 자작곡 실력이다. 4집에서 두 곡을 실은것에 이어, 이번 앨범에서도 양파는 마침내 앨범의 첫곡인 'Marry Me' 와 마지막 곡인 '친절하네요' 로 채우며 한단계 향상된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첫 자작곡인 '지구에서 보낸 한철'이 자신의 세번째 앨범에서 가장 안 좋은 곡이었음을 본다면 이것은 상당히 놀라울 만한 성과이다.
지나치게 큰 부담감
하지만 큰 기대만큼 실망감도 적지 않다고 한다면 오랜만에 돌아온 그녀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일까. 아이러니하게도 6년만의 컴백을 의식해서인지 소위 잘나가는 작곡가들에게서 받은 곡들은 정말 다른 여가수중 아무나 불렀어도 소화가 가능할 만큼 평범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박근태 작곡의 타이틀 곡인 '사랑.. 그게뭔데' 는 작년 상반기 최고의 히트곡인 백지영의 '사랑 안해' 와 별반 차이가 없는 노래인 것은 물론, 후반부에 흐르는 파헬벨의 캐논변주곡은 실망스럽다 라는 말 외에는 쓰고 싶은 단어가 없을 정도이다.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 역시 마찬가지지만, 가요적인 재해석이 없는 유명한곡의 무분별한 사용은, 원곡에 대한 모독이자 대중문화의 질적 하락을 유발한다. 2000년대 들어 가장 잘나가는 대중 작곡가의 작곡능력이 이 정도라는 것은 현재 가요의 전반적인 수준이 딱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리고 지나가는 얘기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양파의 컴백무대에서 고른 비욘세의 곡은 옳지 않은 선택이었다. 양파가 아무리 노래실력이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Listen'은 자신이 잘 부를 수 있는 음역대가 아닌데다, 이런 스케일이 큰 곡은 성량이 떨어지는 양파에게 잘 어울리지 않는다.
프로듀싱의 문제
필자가 가장 비판하고 싶은것은 프로듀서인 김도훈이다. 김도훈은 최근 박근태와 함께 정말 많은 히트곡들을 만들어냈던 가장 잘 나가는 작곡가 중에 한명이지만, 이 앨범을 들어보면 양파의 매력을 살리기위해 고심한 흔적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앞에서도 언급한 박근태는 물론이고 이 앨범에서 프로듀서 및 작곡가로 참여하는 김도훈이 최근 만드는 곡들은 '그게 그거' 이라는 말이 적절하다. 이들의 최근들어 지나친 다작은 이들이 물이 올랐다기 보다는, 제대로 된 가요 작곡가의 부재로 여기저기 불려다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예전에 멜로디를 뽑아내던 감각을 본다면 '양보다는 질' 이라는 말을 명심해서 그 작품수를 좀 줄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타이틀 곡인 '사랑.. 그게뭔데' 는 물론 앨범을 채우고 있는 대부분의 발라드에서의 양파의 창법은 부담스럽게 보이는데, 이 부분은 전적으로 양파의 문제라기 보다는 프로듀서의 책임이다. 전체적인 컨셉은 물론 앨범의 고른 밸런스와 가수의 역량을 최대한 뽑아내야하는게 바로 프로듀서의 역할인데 이 부분에서 김도훈은 실격이다. 좋은 곡만 인기작곡가들에게 받는다고 좋은 앨범이 나오길 바라는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물론 양파의 공백이 길었던 만큼 김도훈은 음악과 대중성이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기보다는 '안정적인 노선' 을 택한것으로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양파는 특유의 매력을 상당부분 잃었다. 예전의 울 때와 안 울때를 잘 가려낼 줄 알았던 특유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서, 양파는 보다 역량이 뛰어난 프로듀서는 물론 개성을 잘 살려줄 실력있는 보컬 트레이너와 함께 작업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차라리 이 앨범에 실린 대부분의 곡들은 양파 보다는 약간 더 동양적이고 '우는' 목소리의 이수영이 불렀다면 더 어울렸을지도 모를 일.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하며
벗겨낼수록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양파처럼 되고 싶다던 그녀가 데뷔한지도 벌써 10년이나 지났다. 무대에서 노래 부르며 행복해하는 그녀의 미소가 아름다운건 사실이지만, 마치 남의 옷을 입은듯이 자신에게 안 어울리는 노래를 부르는건 좀 안타깝다.
컴백의 기쁨에 맞먹는 실망감은 양파 특유의 매력이 상당부분 사라졌음에서 기인하는것도 있지만, 역시 가장큰 이유는 바로 개성없이 비슷비슷한 곡으로 채워진 앨범 때문이다.
일관성이 없고 개성없는 음악으로 채워진 앨범은 그만큼 빨리 식상하기 마련이다.
흔히 유행하는 스타일의 음악보다는 양파에게 잘 어울리는 곡들, 그리고 양파가 하고 싶어하던 음악을 잘 배분해서 앨범을 채웠으면 그야말로 많은 이들은 물론, 양파 자신이 만족할만한 컴백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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