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팅과 영화음악
작년인가. 국내가수들과 음반 제작자들을 대상으로 한 '어떤 가수를 최고로 꼽느냐' 는 설문조사에서 스팅이 1위로 선정됐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누구를 모아놓고 질문을 했는지 대충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순위에 약간의 식상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아무튼 스팅이 유독 국내 가수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이유에는 분명 스팅이 작업했던 영화 음악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꺼라는 생각이다.
하긴 스팅의 영화음악 중에 히트곡들만 모아서 한국과 일본에서만 따로 컴필레이션 앨범이 발매 될 정도이니, 가수나 일반 음악팬들에게 영화 레옹에 삽입된 'Shape of my heart' 라던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에서 흘러나온 'Angel Eyes' 에서 받은 감동은 그리 쉽게 무시할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버지의 죽음
영화음악으로 스팅이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생소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글에서 소개할 The Soul Cages는 스팅의 솔로작 중에 가장 어둡고 황량한 느낌이 드는 앨범이다. 이미 스팅은 전작인 "...Noting Like The Sun" 에서 고급스러운 멜로디와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과시하면서 대중적으로도 성공한다. 하지만 보다 새롭고 실험적인 음악을 만드는것에 대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보이는데('King of pain' 라는 별명답다), 그 상황에서 그의 아버지 마저도 사망하게 되며 큰 슬픔에 빠진다.
사람은 가까운 이를 잃게 되면, 인생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게 되며 그것은 스팅도 예외가 아니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그전에 사망했고 아버지와의 사이도 그리 좋지 못했던 터라, 양친을 잃은 충격은 대단했던거 같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의 시간이나 다름없다.
보다 깊어진 이야기
꽤 오랫동안 번민을 거듭하지만 결국 스팅의 본분은 음악이었고, 3년간의 공백이후 90년대 들어 처음 나오는 정규앨범이자 자신의 세번째 솔로작인 'The Soul Cages'를 완성한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 자신이 태어나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그리고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 그리고 사회와 제도 때문에 생기는 고통, 특히 삶과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를 간접적인 화법으로 말하고 있다.
스팅의 골수팬들이 "...Noting Like The Sun" 과 'Ten summoner's tales'보다 이 앨범을 좋아하는 것은 스팅 특유의 도시적이며 세련된 이미지 보다도, 그에게서 자연스레 풍겨나는 특유의 쓸쓸한 분위기가 상당히 멋스럽기 떄문이다. 아무튼 이 앨범이 "...Noting Like The Sun"과 확실히 차별성을 보이는 점은 이 앨범에서는 스팅의 이야기, 즉 자신의 정서를 더욱 솔직히 표현했다는 것.
그리고 음악적인 면 보다도 삶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 가사가 두드러지는 앨범이라 할 수 있겠다. 양념이 되는 것들은 스팅이 전해들은 바다에 관한 여러가지 전설들과 구약성서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야기를 털어놓을 배경으로 선택된 것은 역시 '바다' 이다. 어디서 들은 얘기지만 스팅은 이 앨범의 가사를 쓰기위해 한 바닷가의 별장을 빌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국적인 느낌과 함께 바다 내음이 동시에 풍긴다.
The Soul Cages
이 앨범에는 전작에 이어서 브랜포드 마샬리스나 케니 커클랜드 같은 멤버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스팅과 파트너쉽을 유지하는 도미닉 밀러와 데이빗 생셔스, 커러 유타 등의 세션들이 합류했다. 특이할 만한 점은 폴리스와 제네시스 앨범의 프로듀서인 휴 패점과 함께 스팅이 공동으로 프로듀싱을 맡은것인데, 이는 'The Soul Cages' 앨범이 "...Noting Like The Sun" 과 음악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라 여겨진다. 전작에서 매우 강하게 드러났던 재즈적인 색채는 이 앨범에서 좀 덜어낸 느낌.
그래서인지 이 앨범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가장 스팅답지 않은 앨범' 이기도 하다. 퓨전적인 요소가 더 많이 가미되었으며, 솔로 앨범이후 이어져 왔던 월드뮤직에 관심을 보인 흔적도 이 앨범에선 여전하다. 이 앨범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All This Time', 'Why should I cry for you?' 는 그에 대한 좋은 예. '특히 'Why should I cry for you?' 는 펫 매스니 그룹의 영향도 꽤 많이 받은거 같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유일하게 가사가 붙여지지 않은 곡. 요즘 같은 계절에 듣기엔 너무나도 멋진, 아르헨티나 출신의 기타리스트 도미닉 밀러의 연주가 인상적인 'Saint Agnes and the burning train' 이다. 그리고 'Mad About You' 는 레옹에 삽입되었던 'Shape Of My Heart'로 스팅을 좋아하게 된 팬이라면 분명 좋아할만한 곡이다.
'The Soul Cages' 앨범은 스팅의 우울한 감성을 반영했기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전작에 비하면 더 무거운편이고 내용도 난해하다. 게다가 첫번째 곡인 'Island of souls' 을 시작으로 'The Soul Cages' 와 'When the angels fall' 같은 곡은 6분을 훌쩍 넘는 대곡인데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전설을 인용해서인지 가사를 제대로 해석하더라도 그 뜻을 온전히 알아차리기엔 쉽지 않다. 이 앨범을 듣고 '어렵다' 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추억에 잠기며
하지만 'The Soul Cages' 는 대중성은 조금 떨어지는 앨범이라고 생각되지만 곡들의 완성도는 전작 못지 않으며, 가사와 신비한 느낌의 곡들의 매치는 더 좋아졌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 앨범은 적응하기에 쉽지는 않다만 익숙해지면, 특히 위에서도 적었듯이 그의 팬이라면 더 좋아할만한 앨범인 것은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을 높게 평가하는것은 스팅이 폴리스 활동은 물론이고, 솔로 앨범의 계속된 성공뒤에 양친의 죽음으로 슬럼프에 빠질만한 상황에서, 이 앨범이 좋은 성적을 거두며 이후 상업성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활동을 계속해서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팅 자신의 인생과 음악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그 시기에 나온 이 앨범은 귀중한 결과물인 것이다.
가을만 되면 왠지 스팅의 음악이 더 귀에 들어온다. 꼭 이 앨범에서의 스팅처럼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 이라던가 성찰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의 음악을 들으며 옛 추억을 떠올리고 지난날을 회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꽤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음악이 가볍게 소비되는 요즘 같은 시대엔 더욱 그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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