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Hable Con Ella, 2002)

영화/영화 리뷰 2009. 9. 10. 14:30 Posted by 루이스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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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피나 바우쉬의 무용극 'Cafe Muller'로 시작된다. 무대에는 흰 옷을 입고 앞을 볼 수 없는 두 여배우가 의자들이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는 집을 돌아다니는데, 한 남자가 나와 여자를 따라다니면서 의자를 치워준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을 한채 그 여자가 가구들에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이 공연을 보고 있는 마르코. 감동을 받은 그는 눈물을 흘리고 옆자리의 베니그노는 우는 그를 이해한다는 듯이 바라본다.  

피나 바우쉬의 무용극은 '그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베니그노의 상황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다. 베니그노는 몇 년이고 돌보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우연히 창가 너머로 보게 된 여자와 짝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는 곧 사고로 인해 코마상태가 되고 간호사인 베니그노는 여자를 4년동안 곁에서 돌본다. 물론 그는 단순히 병간호를 하는 것이 아니다. 머리를 감기고 피부를 맛사지 해주는 것은 물론 그녀가 멀쩡할 때 즐겨했던 것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대답없는 그녀와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앞선 무용극에서 남자배우가 여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 의자를 치워주는 거였다면 베니그노는 그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함께 호흡하는 것이 최선인 것이다. 

한편 마르코는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는 사내다. 이전 연인과 함께 사용하던 침대에서 잠을 이루지 못해 소파에서 자는게 익숙해진, 하지만 여전히 사랑에는 서툰 40대 남자다. 그는 토크쇼에 출연한 '투우사' 리디아를 취재하게 되면서 그녀와 가까워지지만 리디아가 투우 경기중 사고를 당하면서 코마 상태가 되자 그는 다시 절망에 빠진다. 한가지 위안은 알리샤를 간호하고 있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있는 베니그노를 만나게 된다는 것 뿐이다.   

사실 '그녀에게'는 평범한 멜로 영화는 물론 아름다운 예술 영화가 아니다. 멋진 영상과 음악 떄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베니그노의 사랑을 찬양하는 영화라며 오해하기가 쉽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은 감독인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상당히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고전 영화들에 대한 오마쥬 역시 자주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 또한.

재미있는것은 '위험한' 알모도바르가 이 영화를 통해서 포장 즉 돌려말하는 법을 사용했다는 건데, 이런 부분은 무용극 역시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베니그노의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암시하는 흑백 무성영화 'Shringking Lover'와 영화의 복선이 되는 카에타누 벨로주의 공연에서 매우 잘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쟈키스 모렐렌바움의 첼로연주 위에 입혀진 벨로주의 'Cucurucucu paroma'는 압권.  

그녀에게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격정적이고 슬프고 또한 안타깝다. 특히 후반부는 그렇다. 히치콕식 훔쳐보기, 편집증, 정신분열 등등.. 그리고 믿어지지 않는 '기적'까지. 정말 서로 어울리지 않을법한 코드들이 뒤엉켜있지만 탁월한 연출력과 힘있는 각본덕에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내고 있다. 한 때 박찬욱 감독이 그의 영화를 '독버섯'이라며 경계하라는 투로 말한 것이 언뜻 스쳐 지나간다. '그녀에게'가 그나마 대중적이라 이 말이 더 와닿는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알모도바르 못지 않게 불편한 박찬욱 ㅋㅋ)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은 모두 피나 바우쉬의 무용극이 사용되었는데 엔딩의 'Masurca Fogo'는 'Cafe Muller'와는 반대로 밝고 희미하게나마 경쾌하다. '그녀에게'에는 단 네번, 등장인물의 이름이 자막으로 표시되는데 그중에 하나가 처음 베니그노와 마르코의 이름이며 끝이 마르코와 알리샤의 이름이다. 마르코와 알리샤가 서로를 응시하며 마무리 되는 엔딩은 이 영화에서 그나마 희망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P.S 피나 바우쉬는 불과 몇달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내가 영화를 소개할 때는 주로 외국 포스터를 사용하는데 '그녀에게' 만큼은 국내 버전을 좋아해서 유일하게 한글 포스터 버전을 썼다. Leonor Watling의 옆모습이 담겨있는 포스터가 너무 아름다워서 더 기억에 남는 영화랄까. 2000년대 영화중 단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이 영화를 선택할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다. 그녀에게는 볼 때마다 "사랑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한없이 반복하게 만드는데, 그러고 보면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모르는 것이 약이다 라는 말이 진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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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etano Veloso / Cucurucucu par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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