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혼비 원작의 영화 'High Fidelity'의 오프닝에는 정말 인상적인 대사가 하나 나온다. "음악을 들어서 불행해졌을까. 아님 불행해서 음악을 듣게 된걸까."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얘기지만 이 영화에서 존 쿠삭의 말은 단도직입적으로 음악 리스닝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에 가깝다.
아니 도대체 좋은 음악도 얼마나 많은데 음악듣는게 왜 불행할까.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만 음악은 이 영화의 내용처럼 불법 비디오 보다도 한 사람의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있어서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음악듣기로 말할 것 같으면 악영향(?)은 더하다. 일단 청자와 음악이 1:1상황이 되어야 하고(물론 외출할 때 다니면서 듣는건 예외로 친다 하더라도) 진지한 감상을 위해선 다른 것들이 끼어들 틈이 없어야 한다. 한마디로 어쩔 수 없이 비활동적이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1년에 듣는 신보가 상식적인 수준을 넘게 되면 이건 행복이 아니다. 좋은 음악을 찾게 될 때의 기쁨보다도 구린 음악을 들을 때 그 짜증나는 기분을 느낄 상황이 훨씬 많아 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남들이 주는대로 받아먹기만 하는 사람은 이 상황을 절대 이해 못할 것이다.
글을 이렇게 시작한 이유는 영화의 주인공 만큼이나 내 인생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또한 많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평론가가 되기 위해 또 음악을 직접 하기 위해 음악을 듣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쩃든 이런 음악을 듣는 행위 자체는 내 일부가 되었다. 그저 음악 듣는게 좋았고 모르는 아티스트들을 알아가는게 재미있었을 뿐이다. 음악리스닝에 있어서 암흑이었던 2005~6년을 제외하곤 정말 열심히 들었다.
일단 여기 있는 앨범들은 대부분이 내가 구입하고 또 오랫동안 감상했던 것들이며, 이 글은 내가 최근 10년동안 들어온 음악들을 정리하는 과정의 일환이다. 수백,수천장의 앨범(CD 및 음원)들을 놓고 공평하게(동시에 불공평하게) 한 아티스트당 한 앨범씩, 아주 오래전부터 우선순위에 의해 배치해 놨던 순으로 정리해 봤다.
우선 2000년대의 키워드는 '다양함'이다. 혹자는 90년대가 최고였다 아니다 7,80년대가 음악의 전성기다 하는식의 의견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2000년대도 마이클 잭슨이나 너바나 같은 슈퍼스타가 없었을 뿐이지 8, 90년대 못지 않게 들을만한 앨범은 수두룩 했고 또한 지금도 좋은 음악이 많이 나오고 있다. 물론 6,70년대에 비할수는 없겠지만 2000년대엔 8,90년 못지않게 다양하고 좋은 음악들이 있었다. 한마디로 들을 시간이 없거나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모를까 들을 음악이 없다는건 말도 안된다는 소리다.
그리고 매번 결산 하던 식으로 이거 보다 좋았으면, 그리고 더 많이 들었으면 위에 놓는 식으로 정리했다. 앞으로 남은 몇 달동안 또 어떤 앨범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기 리스트에 들어갈만한, 또한 만족할만한 작품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듯 싶다. 적어도 올해 안에는 말이다. 시간이라는 장벽을 넘어 취향이나 평가의 잣대가 될만한 방해물들을 피할만한 작품이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하고보니 확실히 2002년과 2004년 작품들이 많다. 좋은 음악이 많아서 그리고 내가 음악을 많이 들었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 음악도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나는 이 시기의 추억들과 그리고 함께했던 음악이라면 꽤 오랫동안 행복하게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음악=불행으로 시작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글의 마무리는 음악=행복으로 매듭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음악듣기를 위해 다른 것들을 포기했다고 하더라도 반대로 그만큼 얻은 것들이 많았고, 또한 여기 있는 음반들에는 내가 지금까지 함께 보낸 시간들과 함께 많은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어서 불행해졌을까. 아님 불행해서 음악을 듣게 된걸까" 하는 질문을 누군가 내게 한다면 물론 난 음악을 들어서 행복해 졌다고 답하겠다. 좋은 음악은 사람의 인생도 바꾼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 음반, 음악들로 듣는 즐거움을 알고 또한 행복해질 수 있으면 바랄게 없겠다.
P.S 1.블로그 시작하기 전부터 머리속에서 생각하고 있던 글이니 계획한지 3년도 더 됐다. 재미있는건 메탈 키드 였던 내가 헤비메탈 앨범을 단 한장도 넣지 않았다는 것. 드림 씨어터의 'Metropolis Part 2: Scenes from a Memory' 이후 만족할만한 작품이 거의 없었기도 하지만 확실히 몇 년 사이에 취향이 많이 변했다고 봐야겠다.
2. 재즈나 일렉트로니카 힙합도 거의 넣지 않았다. 전자음악은 좋긴한데 크게 감동을 받은 경우가 드물었고, 반대로 랩 뮤직은 여기 올라올 정도로 만족한 앨범은 몇장 없었다. 여기 들어갈만한 카니에 웨스트 앨범은 잘 만든 앨범들이지만 어느 시기부터는 전혀 듣지 않게 되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리고 재즈는 하나둘씩 넣기 시작하면 끝도 없기 때문에 50에 맞추기 위해 일부러 뺐는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2000년대 앨범을 따로 다룰 생각이다. 물론 나는 이렇게 말하고 몇 년 지나서야 하는 사람이다.
3. 마지막으로 100개, 200개씩 채울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건 정리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 보기 편한 리스트를 만들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그저 보기에만 좋은 과시형 리스트'에 그치는 건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4. 9/29 Yo la Tengo의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Out 제외 The Antlers의 Hospice 추가
1-10
Brian wilson / Smile [2004]
브라이언 윌슨의 일생의 프로젝트.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현재 쏟아져 나오고 있는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과 함께 바로 이 앨범이 증명하고 있다. 20세기가 비틀즈의 것이었다면 2000년대 만큼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비치보이스와 브라이언 윌슨의 시대일지도 모른다.
Morelenbaum²& Sakamoto / Casa [2001]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에 대한 오마쥬. 참 신기한 일인데 이 작품을 들으면 리우데자네이루 항구의 새벽녁과 함께 조빔의 뒷모습이 아련하게 그려진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모렐렌바움 부부의 협연만으로도 [Casa]는 특별하다.
Arcade Fire / Funeral [2004]
지난 10년동안 나온 앨범중 가장 위대한 데뷔작. 그리고 음악 리스너들을 가르는 분기점이 된 앨범. 익숙하지만 지루하지 않으며 그 어떤 밴드의 음악보다도 강력한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 2000년대는 이 작품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Sufjan Stevens / Illinoise [2005]
서프잔 스티븐스가 본 세상은 어떨까. 일리노이주에서 벌어진 여러가지 사건들을 토대로 그의 독특한 세계관을 담아 굉장히 방대한 스케일의 음악을 완성해냈다. 현재는 슈퍼맨 라이센스 문제로 슈퍼맨이 빠져있는 이색적인 앨범. 과연 그는 미국 50주 연작을 다 완성할 수 있을까.
Bebo Valdes & Diego Cigala / Lagrimas Negras [2004]
아프로 쿠반 재즈와 플라멩코의 만남.
온몸을 휘감고 지나가는 검은 기운. 그리고 흐르는 검은 눈물.
Radiohead / Kid A [2000]
라디오헤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그리고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구분짓는 앨범.
재미있게도 이 작품은 라디오헤드의 팬들 마저도 나누게 만들었다.
Yo-Yo Ma / Yo-Yo Ma Plays Ennio Morricone [2004]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명인 엔니오 모리코네에 대한 요요마의 재해석.
마치 구름위에 떠 있는 느낌이 드는 음악. 앨범 자체가 너무나 감동적이다
Vashti Bunyan / Lookaftering [2005]
전설로 남을 법한 컴백. 'Just Another Diamond Day' 이후 무려 35년만이다.
세월의 풍파에 조금도 휩쓸리지 않은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목소리.
Tribalistas / Tribalistas [2002]
세 브라질리언의 위대한 프로젝트.
감칠맛나는 멜로디와 멋진 리듬.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감동적인 화음.
Animal Collective / Merriweather Post Pavilion [2009]
21세기의 사이키델릭. 앨범 커버만큼이나 신선하고 재미있는 애니멀 컬렉티브의 팝송.
이들의 최고작인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대중적 타협점을 찾은 앨범이라 충분히 이자리에 오를 만하다
11-20
Interpol / Turn On the Bright Lights [2002]
Wilco / Yankee Hotel Foxtrot [2002]
Björk / Vespertine [2001]
Sean Lennon / Friendly Fire [2006]
Marisa Monte / Universo ao Meu Redor [2006]
Max Richter / The Blue Notebooks [2004]
The Microphones / The Glow, Pt. 2 [2001]
Green Day / American Idiot [2004]
Iron & Wine / Our Endless Numbered Days [2004]
Antony and the Johnsons / I Am a Bird Now [2005]
21-30
Damien Rice / O [2003]
Vinicius Cantuaria / Silva [2005]
Beck / Sea Change [2002]
The Strokes / Is This It [2001]
Jay-z / The Blueprint [2001]
Grizzly Bear / Veckatimest [2009]
The National / Boxer [2007]
Ry Cooder / Chavez Ravine [2005]
Beirut / Gulag Orkestar [2006]
The Flaming Lips / Yoshimi Battles the Pink Robots [2002]
31-40
Tomatito & Michel Camilo / Spain [2000]
Joanna Newsom / Ys [2006]
Danielson / Brother Is to Son [2004]
Bob Dylan / Modern Times [2006]
Godspeed You! Black Emperor / Lift Your Skinny Fists Like Antennas to Heaven [2000]
Jurassic 5 / Quality Control [2000]
The Antlers / Hospice [2009]
Caetano Veloso / A Foreign Sound [2006]
Fleet Foxes / Fleet Foxes [2008]
LCD Soundsystem / Sound of Silver [2007]
41-50
Andrew Bird / Andrew Bird & the Mysterious Production of Eggs [2005]
Tv on the Radio / Return to Cookie Mountain [2006]
Sun Kil Moon / Ghosts of the Great Highway [2003]
Explosions in the Sky / 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 [2003]
Spoon / Ga Ga Ga Ga Ga [2007]
Robert Plant & Alison Krauss / Raising Sand [2007]
Mayte Martin / Tiempo de Amar [2003]
Milton Nascimento / Pieta [2005]
Decemberists / Castaways & Cutouts [2002]
Bon Iver / For Emma, Forever Ago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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