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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동안 스케줄 잡고 닥치는 대로 영화보느라 하나도 쉴 틈이 없었다. 이렇게 지친 상태에서 글을 쓰는것도 거의 기적이랄까. 2박 3일동안 10편 정도를 봤는데 그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것은 바로 지금 소개할 그리스 출신의 프랑스 영화의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가 만든 '낙원은 서쪽이다' 였다. (물론 박쥐 확장판이나 게어선 등도 좋았지만 걸작 반열에 있는건 단연 하얀리본. 곧 틈나는대로 소개해 드리겠다). 그렇다면 일단 GV(관객과의 대화)시간에 그가 했던 얘기들을 잠깐 인용해본다.

"낙원은 서쪽이다는 직접적인 정치영화는 아니다. 그리고 그리스에서 프랑스로 옮겨 활동 하고있는 나 자신을 담고 있는 작품이며 동시에 불법체류자들같은 이주자들을 위한 이야기다. 조금 색다른 시선에서,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보다 보기에 편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관객분들도 그렇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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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대로 '낙원은 서쪽이다'는 코스타 가브라스의 이야기 이기도 하다. 당시 그리스는 군부체제에 있었고 공산당원이었던 부친이 여러번 감옥을 오가며 탄압을 당하는 바람에 그리스에서는 대학에 다닐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무료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프랑스로 무대를 옮겼고 그러다 우연히 영화를 접하게 되면서 이내 빠져들게 된다.

'Z'와 '뮤직박스'외에 코스타 가브라스의 다른 작품을 하나도 접한 적이 없지만 그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고 그래서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판을 기대했기에 '낙원은 서쪽이다'는 상당히 의외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 일상이 바로 정치라고 생각한다. 시대는 변했지만 이제는 개인이 우선 아닌가. 시스템 속에서 개인이 행복한가 아닌가가 중요하다."

 역시 그의 날카로운 시선과 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여전했던 것이다. 물론 영화는 편안하고 위트가 넘친다. 그저 말수가 적은 주인공 엘리아스(리카르도 스카마르치오) 아니 그와 함께 나오는 인물만 따라서 영상에 눈을 맡기면 되는 수준이다. 꿈의 휴양지 '에덴'에 있는 누드비치 부터 시작해서 엘리아스가 진정 꿈꾸던 파리에 도착하기까지 이 모든 과정이 다른 영화에서 쉽게 보기 힘든 진귀한 경험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주자들을 대하는 기존의 거주자들을 바라보는 코스타 가브라스의 시선. 주인공이 파리를 찾아 헤매는 동안 그는 갖은 고생을 하며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 '에덴'에서 물심양면으로 그를 돕는 여자부터, 차를 태워줄것 처럼 가장하고 돈만 가지고 가는 프랑스인과 그를 딱하게 여겨 짐수레에 태워주는 여인과 독일로 가는 짐차에 잠시 태워주는 운전사들 등등..

그들은 엘리아스를 어떻게든 도와주긴 하지만 대부분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나 그저 자신들에게 방해가 가지 않는 선에 머문다. 심지어는 선행을 베풀며 살자라는 신념에 파리로 가는 자신들의 차에 태워주지만 곧 그로인해 말 싸움을 벌이자 두꺼운 옷 하나 없이 추운지방의 도로 한복판에서 내려주는 부부까지.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은 동정심을 떠나 이주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이 거의 없다.

 






코스타 가브라스가 이 영화를 보기에 부담스럽지 없을거라고는 했지만 보는이들의 기대를 처참히 짓밟는 엔딩 덕분에 영화는 맥이 빠지기는 커녕 슬프고 참담한 기분과 함께 많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 자체는 매우 재미있지만 뒷맛이 씁쓸했던 것은 급격한 주인공의 이동과 영화 곳곳에 양념처럼 매우 살짝 가미된 동성애 코드, 그리고 엘리아스에 대한 동정심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부분 선입견과 삐뚤어진 시선으로 등장인물들이 주인공을 대하는 태도, 특히 엘리아스가 모든 것을 걸고 만나러 가는 마술사의 태도와 실제 유럽의 거주민들이 이주자들을 보는 시선과 별 다를게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작품은 다른 영화에서는 불편하게 다가갈만한 요소가 많이 있다만 대사가 적지만 매우 복잡한 심경을 무리없이 표현해낸 리까르도 스카마르치오의 연기덕에 줄곧 유쾌함을 유지한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코스타 가브라스는 우연히 이탈리아 영화를 보다가 이 배우를 발견했다고.

'낙원은 서쪽이다'는 주인공의 연기는 물론 프랑스 영화의 거장의 노련미와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이 배합되어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긴 판타지 영화로 완성되었다. 칠순이 훌쩍 넘은 감독의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코스타 가브라스만이 가진 독특한 작법과 상당한 에너지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거라는 확신이 들게 한 영화.

'낙원은 서쪽이다'는 매우 오랫동안 이번 부산 방문을 기억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단지 좀처럼 뵙기 힘든 감독과 악수를 나누고 싸인을 받아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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