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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아마 국내외의 여러 스포츠 팬들이 쿠바라는 나라에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것은, 아마도 미국을 비롯한 여러 스포츠 강국들의 프로선수들이 국제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던 시절부터, 올림픽과 같은 여러 큰 무대에서 야구나 배구등의 구기종목을 통해 '최강' 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인듯 싶다.

이 카리브해에 위치한 작은 나라가 필자의 눈에 들어오게 된 건 '혁명가' 체 게바라 나 미국과의 껄쩍찌근한 관계 때문이 아닌 빔 벤더스의 다큐멘터리인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영화 덕분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쿠바 음악을 듣게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리라) 이 영화 얘기를 조금 하자면 지금으로 부터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전부터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음악을 맡았었던 음악가이자 기타리스트로도 유명한 라이 쿠더는 1996년 프랑스에서 만난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오초아와의 인연 덕분에 직접 쿠바까지 날아가서 음반을 제작하게 된다.

자신도 직접 세션으로 참여한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셀프 타이틀의 앨범은 예상외의 큰 성공을 거두며 그래미 상까지 거머쥐게 만든다. 이 음반에 완전히 매료된 빔 벤더스가 다시 라이쿠더와 함께 쿠바로 날아가 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게 되었고, 결국 영화마저 큰 호평을 받으며 동시에 쿠바 음악의 정수라고 할만한 이들의 음악은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라이 쿠더나 브에나 비스타 소셜클럽과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다루도록 하고, 어쨋든 오마라 포르투온도, 실비오 로드리게즈,파블로 밀라네스 등의 쿠바의 아티스트들을 접했을 때는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작품중 하나가 바로 베보 발데스가 디에고 씨갈라와 함께 한 'Lagrimas Negras' 라는 앨범이다.

검은 눈물이라는 타이틀 만큼이나 아주 인상적인 앨범 자켓과 아름다운 음악은 '문화충격' 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처음 이 앨범을 들을 때 검은기운이 온몸을 구석구석 훑고 지나가던 느낌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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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보 발데스와 디에고 시갈라

시가와 럼주, 그리고 음악으로 유명한 나라 쿠바에서 베보 발데스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전설' 로 통한다. 그는 쿠바 음악과 재즈가 처음 융화된 트리피카나 나이트클럽(한국에서 말하는 나이트가 아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자 바탕가(batanga) 리듬의 창시자인것은 물론, 역시 쿠반재즈의 대부이자 '듀크 엘링턴에 대한 쿠바의 대답' 이라고 불릴 정도의 엄청난 평가를 받는 거장 추초 발데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베보 발데스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그 외에 기행으로도 유명하다. 아니 기행이라기 보단 뒤늦게 사랑에 빠져버린 덕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다고 해야겠다. 한창 이름을 날리며 활동하던 1960년, 그는 갑자기 음악계에서 사라진다. 그해에 공연을 위해 방문했던 스웨덴에서 자신의 일생의 여인을 만나게 되면서 사랑을 위해 음악은 물론 가족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것을 내려놓은 것이다. 그 이후 34년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마침내 94년, 베보 발데스는 새 앨범을 내고 다시 왕성한 활동을 시작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알려지 있지 않다만(뭐 베보 발데스 역시 마찬가지다) 디에고 엘 씨갈라(Diego El Cigala)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가수로 알고있다. 처음에 이 앨범을 들었을 때 '아니 인간이 어떻게 이런 목소리를 낼 수가 있는거지?'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시갈라의 목소리에 큰 충격을 받았는데, 이후 한번 더 놀란것은 시갈라의 나이가 겨우 30대 중반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만큼 그의 거칠고 텁텁한 음색은 같은 곡이라도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들게 할만큼 탁월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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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장르를 뛰어넘은 만남


베보발데스는 1918년생이다. 현재 한국나이로는 무려 아흔. 이 앨범에 참여한 디에고씨갈라가 1968 년생이니, 이 앨범은 무려 5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은 역사적인 작업인 것은 물론, 또한 스페인의 플라멩코와 쿠반재즈의 '만남' 이라고도 해야겠다. 이 음반을 라틴음악의 새로운 완성이라고 평한다면 비약일까.

사실 현재 대부분의 중남미 음악이 이 플라멩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반대로 워낙에 개성이 강한 플라멩코 음악은 다른 음악과의 융합이 쉽지 않은 편이다. 물론 최근에 재즈를 비롯한 보사노바 음악과 교류가 꾸준히 이루어지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지만, 확실하게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며 퓨전을 이루진 못했던 것 같다. 비유를 하자면 다른 음악을 더 맛깔나게 하기위한 '소스' 수준이었지 '메인'이 되진 못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오랫동안 쌓아온 베보 발데스의 내공에서 비롯된 시갈라를 위한 배려로 인해 서로의 공존과 함께 아프로 쿠반 재즈나 플라멩코가 아닌 또 다른 음악을 가능하게 했다. 쿠바음악 특유의 리듬감 넘치는 베보 발데스의 연주에 씨갈라 특유의 발성과 처절한 절규라니.. 듣기전엔 감히 상상 할 수 없는 음악이다. 이 앨범에서 시갈라의 음성은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마력을 지닌만큼 발데스의 피아노 선율과 어우러지며 상당히 색다른 맛을 내는데, 이는 시갈라의 음색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독특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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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grimas Negras

'검은 눈물', 또는 '슬픔'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이미 여러 라틴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를 통해 수없이 많이 불리워진 노래 제목이기도 한 'Lagrimas Negras'는 베보 발데스와 디에고 씨갈라의 앨범 제목이기도 하다. 타이틀만큼이나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씨갈라의 목소리와 어우러지며 상당히 쓸쓸하면서 어두운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그저 우울한 노래들은 아니며, 오히려 방정 맞을 정도로 휘청거리는 리듬에 톡톡쏘는 목소리는 처음 듣는 사람도 사로잡을 만큼의 매력이 있다.

이 앨범은 듣기에는 상당히 쉬우면서도 익숙한 편인데,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  'Lagrimas Negras'는 물론 이미 오마라 포르투온도나 예전에 소개한 마이테 마르틴등 많은 가수들이 부른 'Veinte Anos' 같은 곡과 같이 상당히 유명한 곡들이 선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듣기에 좋은 다른 이유에는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편곡이 한몫한다. 먼저 앨범의 프로듀서에는 페르난도 트루에바(Fernando Trueba)와 하비에르 리몬(Javier Limon)가 참여했는데, 페르난도 트루에바는 안토니오 반데라스 주연의 영화 투 머치(Two Much)와 예전 탐 크루즈의 연인이었던 페넬로프 크루즈 주연의 아름다운 시절(The Age Of Beauty, Belle Epoque),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2000년에는 라틴 재즈의 길-깔레 54(Calle 54) 같은 영화로 유명한 감독이자 음악 애호가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페넬로프 크루즈를 선호하는듯)

특히 라틴재즈의 역사를 영상으로 담은 라틴재즈의 길-깔레 54 라는 영화는 베보 발데스와 아들인 추초 발데스가 출연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이 영화를 통해 디에고 씨갈라는 음반 작업 전에 이 영화로 처음 베보 발데스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그에게 완전히 사로잡혔다고 한다. 이 두 거장은 La Comparsa 라는 곡을 연주하며 굉장히 멋진 장면을 연출하니 안보신 분은 이 기회에 한번 이들의 공연 장면을 보시는것을 권한다.






역시 앨범이 듣기 편한건 곡마다 필요한 만큼만 넣은 적은 악기구성 때문이다. 이 작품과 동명의 곡인 'Lagrimas Negras'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La Bien Paga' 정도를 제외하곤 모든 곡에서 3~4가지 악기만 사용해서, 화려하진 않지만 반대로 라틴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부담없이 들을 수 있게 담백하게 구성 한 것이 이 앨범의 가장 큰 장점이다. 바이올린만 추가로 포함됐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맛깔나는 연주를 선보이는 'Nieblas del Riachuelo'만 봐도 소박함의 미함은 매우 잘 드러난다.

그와는 반대로 앨범을 살펴보면 상당히 유명한 연주자들이 참여했다. 우선 콘트라베이스(콘트라바조) 및 베이스 연주로 잘 알려진 하비에르 콜리나(Javier Colina)와 타악기인 까혼 연주자 이스라엘 포리나(Israel Porrina), 그리고 쿠바의 유명한 색소폰 연주자 파키토 드리베라(Paquito De Rivera)와 지오 반니 히달고와 함께 가장 유명한 타악기 연주자인 Changuito로도 모자라서, 앨범의 마지막 곡인 'Eu Sei Que Vou Te Amar' 에는 브라질의 거장 까에따누 벨로주까지 나레이션으로 참여했다.

 'Eu Sei Que Vou Te Amar' 은 보사노바의 거장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그의 파트너이자 '보사노바의 음유시인'인 비니시우스 지 모라예스가 함께 쓴 노래다.  이 곡에는 까에따누 벨로주가 'Coracao Vagabundo'의 가사로 노래 중간에 나레이션을 삽입했다. 원곡은 벨로주 최고의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슬픈 멜로디를 배제하고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시를 읊듯이 읽어가는게 인상적이다. 두곡 모두 유명한 노래들이니 브라질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직접 찾아서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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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이 앨범은 이미 발매된 해에 라틴 그래미 시상식에서도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것은 물론 라틴 부분에서 그래미상 수상과 함께 뉴욕타임스의 '올해의 앨범' 에도 선정된다. 게다가 발매 직후 스페인에서는 30주동안 Top 10에 벗어나지 않았으며, Top 30에서 무려 57주간이나 머물렀다. 그리고 스페인에서만 30만장 이상의 판매된 것은 물론 스페인의 'Amigo Awards' 에서 5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한다. 

이 앨범에 대한 사랑은 스페인 뿐 아니라 멕시코, 포르투칼,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같은 모든 라틴계열 국가에서 이어졌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골드 레코드(50만장)를 기록 한것은 물론, 프랑스에서도 월드 뮤직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등지와 동유럽의 불가리아까지도 강타한 것을 보면 앨범의 영향력은 이 두사람과 각자의 나라에만 국한 되지 않은것 처럼 보인다.

두 거장은 반세기라는 시간적인 갭은 물론 문화적, 음악적 차이마저 극복하며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내는데 성공했다. 이 앨범은 단지 '간결함' 과 '능숙함' 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아프로 쿠반 재즈와 플라멩코의 결합 그 자체 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앨범 이후 베보와 씨갈라는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등지를 돌면서 공연을 펼치는데, 아쉽게도 베보 발데스는 여러가지 문제로 남미 투어에서는 빠지게 된다. 그의 나이가 아흔에 가까워진 만큼 앞으로도 건강상의 문제로 그의 공연 자체를 보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가 여태껏 만들어낸 작품들과 앞으로 내는 앨범들은 쿠바를 비롯한 라틴 음악은 물론 현대 대중음악에 있어서도 꽤나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다른 아티스트 같으면 이미 은퇴하고도 남을법한 연로한 나이에 다시 음악계로 돌아와서 새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하며, 놀랍게도 나이를 더 먹어갈수록 훌륭한 작품을 내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음악팬으로서 베보발데스의 연주는 가능한한 계속해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영혼을 담은 음악? 혼신을 다한 연주? 그런 말은 아무데나 함부로 갖다 붙일만한 성질의 단어가 아니다. 다만 이 베보 발데스의 연주와 조금 더 양보하자면 씨갈라의 목소리만큼은 큰 무리없이 그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적어도 여기 이 글을 쓰는 한사람에게 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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