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 앞에서 인라인을 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데뷔작과 즐거워 보이는 아이와 그를 안고있는 어른을 담은 파스텔톤 배경의 서포모어 앨범. 그리고 세면대 앞에 쭈구려 앉아 환하게 웃고 있는 여인이 찍힌 세번째 앨범까지. 일관성 이라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커버들과는 달리 핑크 마티니의 음악에서 쉽게 발견할 수있는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의식적으로 흥겨움을 불러 일으키는 이국적인 리듬과 무료함을 달래주는 맛깔스런 멜로디였다.
물론 전작인 [Hey Eugene!]에서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2인조에 이르는 대규모 밴드인만큼 핑크 마티니는 멤버 모두의 다양한 음악취향을 관철시키며 또한 기존의 팬들을 포함 새로운 음악팬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이들은 좀 더 빈티지한 스타일로 변화를 꾀했던 것. 물론 이전부터 핑크 마티니의 곡에서 월드뮤직의 색채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만 3집에서 보다 진하고 숙성된 정서를 우려낼 수 있었던 것은 앨범의 구성보다도 복고적인 요소를 상당부분 차용한 사운드의 힘이컸다.
하지만 [Splendor In The Grass]는 1,2집은 물론 전작(그래봤자 3장이다만)의 장점을 빼곡히 담아낸 종합 선물셋트 같은 느낌이다. 앨범의 초반부와 후반부가 라운지 뮤직과 애수를 띄는 차분한 라틴풍의 곡들이 대부분 이라면 반대로 앨범의 한 가운데 위치한 곡들은 초기작의 나른한 팝송들보다도 대중적인 곡들로 채워져 있는데, 물론 그중에서도 주목해야 하는 노래는 일반적인 라운지 음악과 이들의 차이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첫곡 'Ninna Nanna'과 흥겨운 리듬이 실린 'Ohayoo Ohio'이다. 이 두 곡은 앨범의 어떤 곡보다도 뛰어나다.
조금 의아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앨범의 리메이크 곡들. 일반적으로 핑크 마티니의 리메이크 곡들이 옛날 흑백영화 분위기를 내기 위한 복고적인 노래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이번 신보에서는 보다 밝은 느낌을 내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곡이 바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적 제1번 1악장의 유명한 도입부를 삽입한 'Splendor In The Grass'다. 그리고 앨범에는 카펜터즈의 명곡 'Sing'의 리메이크 곡도 담겨 있는데 1절은 원래 가사대로 2절은 남자 보컬을 통해 불러 평범한 편곡이지만 의외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둘다 원곡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핑크 마티니가 가진 편안하면서도 이국적인 매력을 살린 올드팝 스타일의 곡들이다.
핑크 마티니의 음악엔 팝도 있고 스윙도 있으며 라틴 뮤직도 있다. 일반적인 라운지 음악으로 치부할 수 없는 가볍게 들을 때나 그 반대일 때나 모두 기분을 맞춰 줄 수 있는 낭만적인 음악. 언제나 그랬듯 핑크 마티니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나른한 오후에 기분 전환용으로는 물론 늦은 밤 라운지에서 분위기 내기에도 무리가 없다. 보통 음악은 때와 장소를 가린다지만 핑크 마티니는 언제나 예외에 해당할 법한 음악이 아닐까.
Pink Martini / Ninna Nanna
Pink Martini / Ohayoo Ohio
Pink Martini / Splendor In The Grass
Pink Martini / But Now I'm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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