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Ok Computer' 직후 라디오헤드의 행보는 정점에 있던 예술가가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기 위한 몸부림 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필사적으로 'Ok Computer'  앨범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모색했고, 결국 'Kid A' 앨범을 통해 난해하지만 완성도 높은 음악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로 인한 멜로디의 희생은 불가항력이었고 대중과의 괴리, 그리고 'Ok Computer' 와의 단절과는 상관없이 'KId A' 이후 라디오헤드의 하락세는 알게 모르게 진행된다. 사운드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만들고 앨범을 발표하는데 있어서 라디오헤드는 한번 더 한계를 느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돌파구를 찾기위해 또 한번 역사적인 일을 벌인다. 음악과는 별개로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획기적인 방법으로 새 앨범을 발매한 것. 그것은 바로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새 앨범의 전곡을 mp3 로 살 수 있게 한 것이다. (물론 디스크 박스도 곧 발매된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소비자가 가격을 임의로 책정해서 결제 하게끔 유도했다는 건데, '우린 음악 제대로 만들었으니 가격은 니네들 양심에 맡긴다' 는 식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발상인가?

여기서 부차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10' 마케팅이다. 앨범의 출시일은 10월 10일, 자신들의 블로그를 통해 앨범 발매를 공언한 것도 출시 열흘 전이었으며 앨범에 수록한 곡수는 정확히 10곡이다. 게다가 In Rainbows라는 앨범명 역시 글자수는 10개 문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심지어는 2진수를 쓰는 코드명인 BCD(Binary code)는 1010101010 라 한다. 이런 것들을 보면 '역시 라디오헤드야' 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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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방식이야 어쨋든 가장 중요한 것은 앨범에 담겨있는 음악의 퀄리티. 기존의 라디오헤드 팬들 조차도 매번 '내용물' 로 놀라게 만들었던 것을 보면 이번 앨범도 역시 심상치 않은 것은 분명한데, 무엇보다도 눈여겨 볼만한 것은 이 앨범에서는 'Amnesiac' 과 'Hail to the Thief' 과는 완전히 다른 'Kid A' 식의 접근법을 택했다는 점이다.

무슨 말이냐면 'Ok Computer'을 극복하기 위해 'Kid A' 를 선택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역시 지금까지와는 다른 노선을 선택하면서 부담감으로부터 초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에서는 다른 앨범에서 느껴지던 무게감과 긴장감이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진다. 그와 동시에 새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멜로디의 '배제' 이다.

왜 '부재'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냐면 톰 요크는 솔로앨범을 통해 여전히 멜로디의 비중이 큰 음악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고 (톰 요크가 만드는 곡들에 대한 평가는 개인차가 있으니 좋다 나쁘다 라고 단정짓기는 힘들듯. 난 별로였다), 무엇보다도 의도적으로 멜로디를 버리고 사운드에 신경을 쓴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멜로디를 대신하여 빈자리를 메꾸고 있는 것은 바로 '리듬'. 최근들어 락음악을 거의 듣지 않고 테크노와 같은 일렉트로니카 계열의 음악 위주로 듣는다는 톰 요크의 인터뷰를 읽어봤다면 눈치 챌 수 있었겠지만, 이 앨범은 그 어떤 라디오헤드의 앨범 보다도 댄서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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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부분은 드럼 앤 베이스를 차용한 '15 Step' 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곡인 'Bodysnatchers' 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앨범의 첫머리에 이 두곡을 배치한 것은 굉장히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의 새로운 음악에 대한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는 트랙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두번째 곡인 'Bodysnatchers' 은 굉장히 지저분한 사운드가 인상적인데 사운드와 구성에 있어서 뺵빽하게 채워진 느낌이 강하게 드는 이 곡은 앨범을 대표할만한 곡으로 손색이 없는 킬링트랙. 놀랍게도 기타와 키보드 만으로 그 어떤 댄스곡보다 세련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표현해 내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 노랜 'jigsaw falling into place' 와 함께 앨범 최고의 곡이다. 

여전히 이 앨범에서도 청자를 위한 배려같은 것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만, 단번에 라디오헤드의 음악임을 확인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정적인 트랙은 역시 수록되어 있다. 라디오헤드 특유의 노이즈와 코러스가 시너지효과를 내는 'Nude' 는 굉장히 음울하다. 그리고 너무 짧아서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기존의 라디오헤드의 조용한 곡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반복청취 할 만한 'Faust arp' 역시 필청 트랙. 

그 외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9번째 트랙인 'jigsaw falling into place'. 빠른 리듬에 얹어져있는 톰 요크의 목소리를 유심히 들어본다면 더 재미있을만한 곡이다.

사실 이 앨범은 그 어떤 라디오헤드의 앨범보다도 사운드와 리듬을 의식하면서 감상하는 것이 좋다. 특히 멜로디보다도 리듬의 비중이 큰 만큼, 예전에는 'No Suprises' 의 아름다운 멜로디에서 감동을 느꼈다면 이번 앨범을 예로 들면 'reckoner' 같은 곡에서 그루브를 만끽하는 것이 라디오헤드의 신보를 즐기는 포인트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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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그리고 10년이상 활동한 중견 밴드들을 보면 보통 자신들의 위치와 업적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라디오헤드 만큼은 예외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왕성한 소화력으로 대중과는 거리가 먼 음악들을 메인으로 끌어들여, 심지어는 프로그레시브 메틀 밴드들보다도 '제대로' 프로그레시브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사실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여기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다. 한마디로 라디오헤드가 대단한 것은 메인스트림에 있었던 밴드가 스스로 무대를 옮겨서 비주류 음악을 주체적으로 수용 및 소화 하기 때문에 주목받을 만한 것이고 대단한 것이지, '무에서 유를 창조' 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쨋든 라디오헤드는 'In Rainbows' 를 통해 다시 한번 진화했다. 자신들 스스로를 한계의 대상으로 삼아 이번에도 역시 그 한계를 뛰어넘었고, 또한 음악적으로도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이 앨범으로 입증했다. 그리고 라디오헤드의 신보는 음악 그 자체보다도 앨범 발매방식에 있어서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고 본다.

음악 팬들이 여전히 이들에게 기대는 것은 예전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그리고 누구나 소화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내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사람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지언정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여러가지 요소들을 버무려 노련하게 '요리' 해낼 수 있는 실력자이자 몇 안되는 노력파이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이들의 성과는 현재가 아닌 시간이 훨씬 더 지난 후에 평가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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