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가사가 잘 안 들리는 음반이 있는데 꼭 외국에서 발매된 작품이 아니더라도 가요중에서도 그런 경우는 예외가 아니다. 지금 소개할 박준혁의 솔로작은 몇 번을 들어도 가사가 귀에 잘 안박히는, 전체적인 내용과 메시지 보다는 안개에 가려진 듯한 몽롱한 분위기가 더 강하게 기억에 남는 앨범 중 하나다.
이 앨범은 평범하다면 평범하다. 모던락 풍의 잔잔한 분위기에 어찌보면 심심하게 들릴 정도로 담백한 곡들로 채워져 있으며 가사 또한 주위에서 흔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다. 하지만 편하게 마음을 비우고 듣기에는 감당하기 버거운 감정의 해일이 잔잔하게 밀려든다. 박준혁의 건조한 목소리와 정확하지 않은 발음은, 우울하지만 절망적이지 않은 그의 음악을 표현하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신인이나 다름없는 가수가 여유로운 음악을 하는것도 참 드문 일이다. 각각의 곡에서 뿐 아니라 앨범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여유. 그리고 슬픔속에서도 드러나는 담담함. '그래. 그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지' 라고 하는 듯 고통을 묵묵히 감내해내는 모습은 복잡함이나 치열함과는 거리가 멀다.
잘 만든 앨범이라고 듣기 좋은 작품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박준혁의 데뷔 앨범은 올해 나온 앨범중 그 두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만한 앨범이 아닐까 싶다. 신보가 나온지 한달이 지났음에도 박준혁이 아직 대중들에게 생소한 존재인 이유는 아무래도 음악풍이나 앨범의 완성도와는 상관없는 홍보의 문제 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