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 / Insensible [1998]

밤이되면 괜시리 듣고 싶어지는 앨범이 있다. 핑크 플로이드의 'Dark Side of The Moon' 이나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Tango: Zero Hour', 그리고 팻 매스니 그룹의 'Offramp' 같은 앨범들 말이다.

하지만 위의 앨범들 만큼이나 밤에 잘 어울리는 앨범은 바로 윤상의 'Insensible'이라 생각한다. 밤이 아니면 도저히 그 분위기를 소화할 수 없을 듯한 음악. 그리고 정규앨범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윤상의 전 앨범을 통틀어 첫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앨범. 음악은 들을 수 있었지만 정작 최근까지도 내가 소장할 수 없었던 희귀반중의 희귀반이다.  

Insensible은 윤상 커리어를 반으로 쪼갠다면 시기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딱 중간쯤에 위치하는 앨범이다. 내가 이 앨범에 아쉬운 생각이 드는건 곡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 앨범이 정규앨범으로 발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Renacimiento을 아예 외국어 앨범으로 발매하고 그 앨범에 수록된 '벽', '배반' 과  신해철과 함께 만든 No Dance에 있는 '달리기' 와 '자장가', 그리고 '반격' 을 넣어서 EP가 아닌 정규앨범으로 나왔다면 자타공인 윤상 최고작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클리셰의 첫번째 CD보다도 두번째 CD를 더 좋아하는 건 그나마 정규앨범으로 발매하지 않은 아쉬움을 두번째 CD로 대신 채워줬기 때문이다.

윤상을 언급할때 빠질 수 없는 것은 역시 빈틈없이 꽉곽 채워논 풍성한 사운드. 윤상은 보통 완벽주의자라는 소릴 많이 듣는데 내생각에 윤상은 완벽주의자 보다는 장인(匠人)에 가깝다고 본다. 한음 한음을 절대 아무 소리나 끼워 맞추는 법이 없고 좋은 곡이 나올때까지 시간에 관계없이 공을 들이고 에너지를 소비하는 음악을 만드는 명장(名匠). 이 앨범은 비록 녹음 상태는 그리 좋지 못하지만 그런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곡들이 대부분이다. 음질 문제는 기억하기로 윤상이 의도적으로 로우파이로 녹음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Insensible의 백미는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악몽'이다. 이 노래는 늦은 밤 불을 끄고 이어폰이 아닌 입체감을 선사하는 다채널 스피커로 들으면 그렇게도 멋질 수가 없다. 무중력 상태에서 둥둥 떠다니며 부유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곡. 이 노랜 특히 가사가 예술이다. '한참을 난 떠다녔지. 숨막히는 어둠 속을 낯설은 거리에 버려진 아이처럼 난 누굴 찾고 있는지 여기는 또 어딘지... 괜찮아 견딜수 있어 잠깐일꺼야 눈부신 아침이 멀지 않았으니...'
 
 물론 악몽 뿐 아니라 '언제나 그랬듯이' 나 라디오에서도 많이 리퀘스트 된 '마지막 거짓말', 그리고 '기념사진' 역시 그에 못지 않은 명곡들이다. 이 앨범에서 악몽 다음으로 많이 들은 곡은 '언제나 그랬듯이'인데 이 노랜 현악기를 눈꼽만큼도 쓰지 않았는데도 국내에서 나온 그 어떤 마이너 발라드보다도 더 슬프고 음울하다. 첫부분에 나오는 아코디언 소리가 그야말로 압권. 그리고 '마지막 거짓말'은 완성도에 있어서 지금도 국내에서는 따라올 곡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도 사려고 노력했지만 최근에서야 구할 수 있었던 윤상의 Insensible. 이 앨범이 윤상 매니아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은 희귀한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무엇보다도 수록된 곡들이 너무 훌륭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 앨범에 들어있는 노래들이 아니었다면 윤상의 음악과는 지금도 가깝게 지낼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중고이긴 하나 정말 구하기 힘든 이 앨범을 선물해준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P.S 이 앨범에 수록된 6곡중에 4곡은 더 나은 음질로 3집 'Cliche' 의 2번째 CD에 함께 포함되어 있다.
      소장이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이 앨범을 살 필요는 없다. 물론 3집 클리셰도 구하기 힘든건 마찬가지지만..      
    윤상의 앨범을 다 모으면 윤상 관련 글을 쓰려고 마음 먹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전작이 갖춰져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