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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밴드와 여자 보컬. 웬만한 락음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이 조합을 정말 안 좋아하는데, 이런 편견을 반영하지 않더라도 디어클라우드의 나인의 목소리는 일종의 '양날의 검' 이라 할 수 있다. 나인의 중성적인 목소리는 듣는이를 단번에 사로잡을만한 매력을 갖고 있지만 곡 자체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앨범'으로 이들의 음악을 접할 때 상당히 단조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곡마다 생명력을 불어 넣어줄 보컬의 테크닉과 메세지 전달력에 대한 부분을 굳이 단점으로 꼽지 않더라도 엄연히 분위기 면에서는 그렇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데뷔작인 <Dear Cloud> 에서 그나마 아쉬웠던 부분, 즉 곡들에서 비슷비슷했던 느낌을 받았던 것을 나인의 탓으로 모두 돌리긴 힘들다. 디어 클라우드의 핵심은 리더인 용린의 기타 사운드이며, 보컬이나 사운드 그리고 완성도 측면에서 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일관되게 유지되는 것이 약점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비중과 배치, 그러니까 '프로듀싱'의 문제지 적어도 '실력'에 있어서 흠잡을 부분은 거의 없었다는 소리다. 실용음악과 출신답게 이들 멤버들은 파트별로 따로 놓고봐도 될 정도로 기량은 물론이고 밴드의 호흡이 상당히 좋다. 실제로 앞서 약점이라고 하고 있는 나인 목소리도 신인답지 않게 청자의 감정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호소력이 강하며 음색 또한 매력적이다.  

어쨋든 이번 <Grey>에서는 분위기를 포함 여러 부분에서 상당한 변화가 있다. 우선 전작에서 아쉬웠던 부분이었던 곡들의 배열과 조합이 상당히 좋아졌으며, 어쿠스틱한 음악을 기반으로 여러 다른 밴드들의 사운드 텍스처를 입히는데 그치지 않고 노이즈의 비중이 더 높아지면서 한층 더 성숙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특히 <Dear Cloud>에서는 보컬이 용린의 기타 만큼이나 큰 역할을 했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보컬의 비중을 다소 줄이며 노이즈와 기타 그리고 보컬이 거의 대등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앨범에서 좋은 곡들을 추천하자면 가장 먼저 첫곡인 'Siam'를 들 수 있다. 지글거리지 않는 맑은 노이즈와 디어 클라우드 사운드의 핵심인 기타 사운드, 그리고 나인의 음울한 보컬이 조화를 이루는 이 노래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압권이다. 'Siam'은 앞으로 디어 클라우드가 가야 할길을 제시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작이 아이보리 느낌이 나는 음악이었다면 <Grey>는 앨범 제목 그대로 회색빛이 나는 음악이라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Siam'은 가장 회색에 가깝다.

<Grey>에는 이 외에도 전작 못지않게 킬링 트랙이 많은 편인데, '부탁해'와 '슬픈 혼잣말'은 그에 대한 가장 좋은 예다. 특히 '부탁해'는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과 유사한 분위기로 곡이 시작되다가 디어 클라우드 특유의 강렬한 사운드로 돌변하며 기타연주와 나인의 보컬이 이어지는 곡으로, 'Siam'은 물론 타이틀 곡인 'Lip'과 함께 디어 클라우드가 사운드에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곡이기도 하다. '슬픈 혼잣말'은 후반부가 약간 아쉽지만 귀에 단번에 박히는 멜로디와 징징 거리는 용린의 기타 사운드가 일품으로 '거짓말'과 함께 앨범에서 가장 우울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곡이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곡은 바로 '나에게만 너를 말해주기를' 이다. 적어도 멜로디에 있어서 만큼은 전작의 '넌 아름답기만 한 기억으로' 와 함께 디어 클라우드 최고의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같은 멜로디의 반복 만으로도 5분이 넘는 곡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멜로디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디어클라우드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곡을 잘 쓰는 밴드중에 하나다. 뿐만 아니라 트렌드에도 상당히 민감하며 다른 장르의 음악을 건드리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밴드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전작과는 달리 스킵할만한 트랙은 과감하게 제외하고 비슷비슷한 느낌을 상쇄할만한 요소를 집어 넣는 것만 봐도 이들은 확실히 발전하고 있다. 이런 의견을 잘 뒷받침 하고 있는게 바로 <Grey>다.  

사실 약간은 아쉬운 점이 남는다. 이 앨범에는 좋은 곡은 많지만 전작의 '얼음요새' 처럼 청자를 단번에 사로잡을 만한 곡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디어 클라우드는 개별적으로 곡들은 상당히 좋지만 아직 좋은 멜로디를 잘 엮어줄 프로듀서는 만나지 못한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어정쩡한 타이틀곡인 'Lip' 만 보자면 디어클라우드는 시대의 조류에서 한발짝 물러서 있기 보다는 돌아가는 흐름 자체를 잘 모르고 있는거 같기도 하다.

이들이 부족한 부분들을 해결할 때 우리는 또 하나의 웰메이드 앨범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상당히 훌륭하지만 말이다.  




 


디어 클라우드 / Lip





디어 클라우드 / 거짓말 (EBS 스페이스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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