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 / 사랑하기 때문에 [1987]

음반 리뷰 및 소개/가요 2008. 10. 31. 22:23 Posted by 루이스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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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천재는 일찍 죽는다.' 는 말이 있다.

그 옛날의 모짜르트까지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기타로 할수 있는 모든것을 보여준 지미 헨드릭스가 그러하며, 사회주의 체제붕괴와 함께 탈냉전시대의 시작을 알리기라도 하듯 마이클 잭슨의 아성을 무너뜨리며 비주류 음악으로 세계를 점령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을 비롯해서, 가요의 새로운 틀을 제시한 유재하까지 모두 20대에 사망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신화적인 존재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비록 그들이 시도했던 음악은 전혀 다르지만 요절하기 전까지 짧은 기간 활동하면서 시대를 주도할만한 음악성과 감각으로 성과물을 내놓았음은 물론이거니와 그 음악을 통한 자기성찰을 이룩해내는 위치까지 올라 있었다는데 공통점이 있고, 특히 음악에서 그들 특유의 에너지가 살아 숨쉬는것, 그게 바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이들의 음악을 곱씹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80년대 아티스트들

보통 우리 가요의 전성기는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로 본다. 그중에서도 80년대 중,후반 가요계는 양은 물론이고 질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뛰어났는데, 당시에 활동했던 아티스트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어느정도 수준이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왕 조용필과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이문세, 그리고 라이브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들국화와 김현식, 그리고 어떤날, 시인과 촌장이 동시에 활동했던 떄였으니 더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 아무튼 그 시기에 활동하던 아티스트들은 가요의 자생력을 키우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는데, 그  많은 뮤지션중에서도 80년대에 '음악성' 과 '영향력' 이 두가지만으로 큰 발자취를 남긴 음악감독을 몇명 선별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어떤날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조동익과 이병우, 조용하지만 잔잔한 감동을 전한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그리고 이문세의 뒤에서 음악감독으로 한국 발라드의 전형을 제시한 이영훈 등이다. 

하지만 나는 이 중에서도 故 유재하를 첫손에 꼽고싶다.




유재하의 음악활동

대학교 작곡과에서 클래식 작곡법을 습득한 故 유재하는 1984년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을 통해 키보디스트로 데뷔한다. 그는 85년 조용필의 7집 '사랑하기 때문에' 을 시작으로 이문세의 3집과 문관철 1집에 각각 수록된, 지금까지도 꾸준히 리퀘스트 되는 명곡 '그대와 영원히'와 1986년에 발표된 김현식의 3집 앨범에 실린 '가리워진 길'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다. 그외에 그가 만든곡으로는 한영애 2집에 실린 '비애' 가 유일하다. 

그는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에서 활동하기도 했는데, 유재하는 故 김현식에게 많은곡을 써주었다는 얘기가 있지만 정작 김현식의 반응이 별로 좋지않아 유재하는 상당히 실망했고 둘의 사이가 서먹해졌다는 일화가 있다. 그로부터 1년후, 유재하는 87년 8월 마침내 자신의 이름으로 앨범을 낸다. '사랑하기 때문에' 는  단 한장뿐인 그의 앨범이며 한국가요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수작이다.

80년대 팝뮤직의 홍수속에 이문세-이영훈 콤비가 고급스러운 발라드음악으로 국내 리스너들이 서서히 가요로 관심을 돌린 한 시점에 나온 이 앨범은 그 시대적 흐름에 대한 응답이었고, 한국 가요발라드의 완성이자 새로운 출발이었다.  

이 앨범이 나온이후 2년도 안되서 나온 또 다른 천재 김현철의 데뷔앨범 역시 놀라운 완성도를 지닌 수작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재하의 앨범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은것은 그의 죽음과는 무관한,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온지 20년이 되었지만 이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은 상당히 세련된 느낌이다. 한국적이면서도 트롯에서 완전히 벗어난 듯한 멜로디 진행과 작곡법은 그 이후에 활동하는 김현철, 김형석, 김동률, 유희열등 90년대 발라드 작곡가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의 맑은 정서가 드러나는 멜로디는 물론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배열도 이 앨범의 완성도에 한몫한다. '그대 내품에', '내마음에 비친 내모습', '가리워진 길', '사랑하기 때문에' 등의 사이사이에 위치한 리듬감 있는 '우리들의 사랑', '텅빈 오늘밤' '지난날' 은 자칫 비슷한 느낌으로 일관할 수 있는 발라드 앨범의 단점을 상쇄하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멜로디 뿐만 아니라 가사의 깊이에 있어서도 이 앨범은 차원을 달리하는데, 당시 유재하가 좋아했던 그녀에 대한 '사랑' 과 함께 자신의 진솔한 내면을 전달하는 것은 세련됨과는 반대에 위치하는 풋풋하고 투박한 느낌의 그의 목소리였다.

한가지 유재하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유재하의 앨범이 발매되고 방송심의를 위해 MBC의 PD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엇박으로 시작되는 그의 노래를 듣고 박자도 못 맞춘다며 노래를 못 부르는 가수 취급하고 출연을 불가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가 KBS의 젊음에 행진에서 지난날을 부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TV 출연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가리워진 길

유재하는 데뷔앨범을 낸뒤 같은해 11월1일 25살의 젊은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정말 짧은 기간을 활동했지만, 그리고 한장의 앨범만을 내고 사라졌지만 그가 현재까지도 가장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단지 그의 요절로 인한 잘못된 과대평가가 아닌 것임을 지금까지도 이어져오는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의 칭송과 추모행렬 그리고 이 앨범이 증명하고 있다.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로 죽어서도 가요계에 공헌하는 그를 보면 '얼마만큼 살았느냐' 보다는 '어떻게 살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조금만 더 오래 살았으면, 아니 한장의 앨범이라도 더 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것은 물론이고.

가리워진 길을 들으며 안개가 낀 듯 앞이 보일 듯 말 듯한 나의 앞날을 바라본다
이 노래를 만들며 자신을 비춰 봤을 유재하를 떠올리며..
   
07/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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